현황
전자게임기에 대한 특별소비세(특소세) 폐지여부에 대해 관련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수입을 억제하고 국내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지난 76년에 제정한 특소세법에 근거, 게임기에 부과된 특소세는 90년대들어 국산제품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유통질서를 혼란시키는 주원인으로 꼽혀 그동안 관련업계는 이의 폐지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전자게임기는 컴퓨터게임장(전자오락실)에서 사용하는 업소용 게임기(전자유기기구)와 TV와 연결해 사용하는 가정용 게임기로 구분된다.
지난 97년 말 개정된 특소세법은 업소용 게임기를 투전기, 오락용 사행기구 등과 함께 제1종 과세대상으로, 가정용 게임기는 가전제품 등과 함께 제2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제1종의 세율은 물품가격의 30%다. 30%에 달하는 특소세외에도 특소세액의 각각 30%와 10%에 해당하는 교육세와 농어촌 특별세가 붙는다. 또 물품가격과 세가지 종류의 세금이 합쳐진 공급가의 10%를 부가세로 내야 한다. 쉽게 말해 대당 100만원짜리 업소용 게임기에 대해 업소가 납부해야 하는 세금은 156만2000원에 달한다. 부가세를 빼고도 특소세와 이에 수반되는 세율이 무려 42%에 달하는 것이다.
가정용 게임기의 특소세율은 원래 15%였으나 IMF 이후 환율이 폭등하면서 업계의 부담이 가중되자 한시적으로 올해 말까지 10.5%만 부가하기로 하향 조정했다.
문제는 이같은 고율의 세금이 탈세와 불법 유통을 조장하고 한발 더 나아가 개발·제조업체까지 왜곡된 유통체계의 흐름에 편입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 게임기업계 전체가 복마전으로 매도당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한국게임기산업협회(회장 한춘기)가 국세청 자료를 근거로 공개한 지난해 국내 업소용 게임기 특소세 징수 실적은 불과 5억여원. 지난해 이분야 시장규모가 최소한 5000억원대로 추산되는 점을 감안하면 특소세가 거의 무용지물에 다름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탈세를 하고 있는 업체들 역시 마음이 편하지 않다. 당국이 불시에 세금조사를 하거나 경쟁업체가 신고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형편이다. 이들 사업자들은 떳떳이 드러내고 사업을 하지 못하는 데 따른 고통이 너무 크다고 얘기하고 있다.
고율의 특소세와 이에 따른 탈세·불법 유통이 정상적인 업체를 도태시키고 제도권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통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향후전망
게임기업계는 최근 특소세 폐지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첫째, 경기가 다소 호전되면서 세수 확보를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는 당국의 특소세 조기폐지 불가론에 대해 반박할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게임산업에 대한 인식이 180도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정부가 게임산업을 고부가 문화·지식산업으로 간주, 정책적으로 육성하겠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한국게임기산업협회(회장 한춘기)를 비롯한 국내 6개 단체는 이미 「특소세 폐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이같은 분위기를 특소세 폐지의 기회로 십분 활용하고 있다.
문화부 역시 게임산업 주무부처로서 게임기에 대한 특소세 폐지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칼자루를 쥔 재경부는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세수확보와 과세의 형평성을 들어 난색을 표명했다.
그러나 지난 8월 대통령이 「중산·서민층 소비물품에 대한 특소세 폐지」를 언급한 것을 계기로 재경부는 특소세를 총체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지난 8월 말 당정협의를 거쳐 내놓은 세제 개편안에 가전제품 등과 함께 가정용 전자게임기를 특소세 폐지품목에 포함시켰다.
가정용 게임기에 대해서는 재경부 스스로가 특소세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세제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만 하면 특소세가 폐지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업소용의 경우 완전히 폐지될지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가정용에 비해 세수확보 여지가 많고 게임기를 사행성 오락기구와 동일시하는 보수적인 분위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재경부 소비세제과의 한 관계자는 『전자유기기구를 특소세 1종 과세대상에서 제외할 것인지의 여부를 검토하고 있지만 결과에 대해 언급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특소세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재경부의 입장변화를 시사하는 것이어서 게임산업 육성이라는 국가적 명분 아래 게임기 전체가 면세대상이 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문제점은 없나
게임기에 대한 고율의 과세만이 문제가 아니다. 세율과 별도로 징수와 관련한 문제점들이 적지 않다.
첫째, 과세대상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일반 게임장에 설치하면 30%의 특소세가 붙는 업소용 게임기라 할지라도 이 제품이 유원시설물에 들어가면 관광촉진법 등에 의해 면세가 된다.
둘째, 부품에는 면세가 되며 완제품에만 세금이 붙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징세방식으로 인해 수입업체나 개발사들은 기판 등 핵심부품을 중간유통상에 넘기는 방식으로 특소세를 피하고 있다.
결국 게임기의 특소세는 최종 완성품을 조립·공급하는 케이스업체들에 전가되는데 케이스업체들 역시 제품가격을 정상가격보다 크게 낮추는 방식 등으로 납세의무를 피한다. 또 게임에 관한 제반 법률은 지난 5월 발효된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합 법률」에 통합됐으나 특소세법은 공중위생법에 근거한 게임기를 지칭하고 있어 법률간에 괴리감이 생기고 있다.
또 컴퓨터게임장업주들은 멀티게임장(PC방)에서 PC가 게임기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과세가 되지 않는다며 형평성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예상되는 파급효과
게임기에 대한 특소세 폐지는 어떠한 효과를 가져올까.
국내 산업기반의 취약성을 들어 특소세 폐지가 수입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가정용 게임기의 경우 국내의 산업기반이 업소용보다 취약해 일본업체와 수입업자들의 배만 불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특소세 폐지로 인해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는 미흡할지 몰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효과가 지대할 것이라는 점이 업계의 중론이다. 가장 큰 기대는 특소세 회피가 초래했던 음성적인 유통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유통질서의 정상화는 개발·제조업계에 파급돼 국산 제품의 경쟁력 강화, 수입대체·수출증가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국의 입장에서도 세수증대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나치게 높은 세율로 조세저항을 일으키는 특소세 대신 부가세만 잘 거둬들여도 현재보다 훨씬 많은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결론적으로 게임기에 대한 특소세 부과가 여러 측면에서 역기능이 많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특소세 폐지는 국내 게임산업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형오기자 ho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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