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ATM교환기 "애물단지"

 한국통신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그리고 교환기 4사가 초고속 통신서비스 상용화와 데이터 통신 장비의 국산화 토양 마련을 위해 지난 93년부터 6년여 동안 총 3000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국산 ATM 주 교환기(한빛 ACE64)가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에서 크게 뒤져 수출은 물론 국내에서도 외면당할 처지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반영, 부랴부랴 개량형 모델을 개발하고 있지만 이 역시 시장성 측면에서는 미지수다.

 왜 가격경쟁력을 상실했나

 우선 수요 예측이 빗나갔다.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의 강병창 연구위원은 『본격 개발에 착수한 97년 당시에는 2003년경 모든 가정까지 광케이블이 깔리고 ATM기술이 보편화된다는 전제하에 스위칭 칩과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하는 등 핵심기술 국산화에 초점을 맞췄다』며 『그러나 예상보다 ATM장비 시장이 성장하지 못하면서 상용부품을 사용한 해외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크게 뒤처지는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제품 수준을 너무 높게 잡은 것도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교환기 4사가 상용화한 ATM교환기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망 동기 3중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망 동기 기능은 제품이 고장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클록주파수에 동기시키는 것으로 해외 제품은 보통 2중화나 1중화를 지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까다로운 규격까지 지원하다보니 개발기간이 오래 걸렸고 이로 인해 세계적인 추세에서 멀어졌다.

 국내에서도 외면

 국산 ATM 주 교환기는 올해 데이콤에 12대, 한국통신에 16대가 설치된 것이 전부다. 하나로통신을 비롯한 다른 기간통신사업자는 물론이고 기업용 ATM교환기로도 전혀 채택되지 않은 상태. 무엇보다도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한국통신의 경우 1차 입찰에서는 개발조달 방식을 적용, 해외제품과 국내제품을 분리 구매해 국산제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 연말 늦어도 내년초에 있을 2차 입찰부터는 해외제품과 국내제품을 분리하지 않고 입찰을 실시할 방침이다. 한국통신의 한 관계자는 『국제무역기구(WTO)의 다자간 통신장비협정에 따라 향후 입찰에서는 해외업체에 동등한 자격을 줘야한다』며 『국내 업체들에 적용한 기준을 통과한 해외 업체들에 개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국내 업체들도 이제는 보호막에서 벗어나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하며 가격, 성능을 비교,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업체 제품을 선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 주장

 업계에서는 해외업체에도 입찰 기회를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산 제품 스펙과 동등한 기준을 적용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국산 제품이 성능 대비 가격에서는 뛰어나다는 판단에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제품 가운데 한빛 ACE64와 동등한 기능을 갖춘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동등한 기준을 적용하면 국산 제품이 불리하지만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뉴브리지·노텔네트웍스·루슨트테크놀로지스 등 해외 유수 업체들이 한국시장 공략을 위해 전략적으로 접근할 경우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는 크게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이 업체들은 전세계에 안정적인 수요처를 두고 있어 가격에 대한 여지가 국내 업체보다 자유롭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품 개발 초기부터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개발해야 했으나 한국 시장에 너무 얽매여 절름발이 신세가 됐다』며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해 미국 텔리전트사에 수출하고 있는 ATM교환기인 「스타레이서」가 좋은 예』라고 밝혔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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