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창간17주년> 인류의 삶 밝힌 "文明의 등불"

 전기전자정보통신의 발원은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전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발견한 전기로부터 시작된다. 탈레스는 호박(琥珀)을 마찰시키다 전기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전기전자정보통신이 있기까지는 19세기 이후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집중적으로 행해진 발견·발명의 결과가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가운데서도 압권으로 꼽히는 시기는 특히 반도체와 컴퓨터의 개발이 시작된 금세기 후반 50년 동안이다.

 전기의 발견은 고대 그리스시대 학자들이 완성한 세계 연구에 대한 「과학적 방법론」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과학적 사고가 체계화 되지 못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전기전자정보통신의 발달은 없었거나 지금으로부터 훨씬 뒤의 일이 됐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의 과학적 방법론은 11세기 이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의 완성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발명 등을 낳았고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과 갈릴레이의 운동법칙 등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19세기 들어서는 과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한 실용적 이론체계나 기기의 등장이 잇따랐다. 미국의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견했는가 하면 영국의 맥스웰은 전자기 방정식을 완성했고 톰슨은 마침내 전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백열전구·영사기·축음기 등 천재 발명가 에디슨의 불후의 「작품」들도 이때 등장했다. 이어서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모스가 모스부호를 고안했고 이탈리아의 마르코니는 모스부호를 전송할 수 있는 무선전신을 발명, 20세기가 정보통신에 의한 지구촌시대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영국의 플래밍이 진공관을 발명하면서 시작된 20세기 전반기는 일반인들이 직접 청취할 수 있는 방송국의 개국과 텔레비전의 등장 등 숨가쁜 발명·발견이 잇따랐다. 방송국의 등장과 진공관 라디오 및 텔레비전의 대량보급은 발명과 발견의 중심이 전기에서 전자로 옮겨감과 동시에 산업혁명 이후 최대 산업인 전자산업의 탄생을 알리는 중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금세기 최고의 발명품은 역시 반도체와 컴퓨터가 꼽힌다. 반도체는 1948년 미국의 브래튼·바딘·쇼클리 등이 공동 개발한 트랜지스터가 기원이 됐다. 트랜지스터는 기존의 진공관 1개를 간단한 회로 1개로 대체한 것을 말하는데 1958년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는 기판 하나에 트랜지스터 회로를 사실상 무한하게 집적할 수 있는 집적회로(IC)를 완성함으로써 오늘날 반도체 신화의 서막을 열었다.

 컴퓨터는 1946년 제2차 세계대전, 미국의 에커트와 모클리가 완성한 진공관식 에니악(ENIAC)이 그 원조. 이후 컴퓨터는 1964년 중반 IBM이 IC기반으로 설계한 시스템/360을 발표하면서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다. 컴퓨터가 반도체기술의 직접 영향권에 든 것은 1971년 인텔이 4004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하면서부터.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의 개가는 1981년 IBM으로 하여금 책상 위에 올라갈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PC)를 만들어 내게 했다. 인텔은 이어 386·486·펜티엄 등의 프로세서 개발에 잇따라 성공함으로써 컴퓨터 역사를 바꿔놓는 계기를 마련했다. 1981년 MS­DOS 1.0이라는 PC용 운용체계를 발표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역할도 지대한 것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95년 「윈도95」를 발표함으로써 인텔과 함께 세계컴퓨터산업을 지배하는 양대산맥으로 부상했다.

 컴퓨터와 반도체가 세인들로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동안, 별다른 시선을 끌지 못한 채 조용한 진보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던 분야가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1962년 미국 국방부 산하 첨단연구계획국 (ARPA)에서 시작된 알파넷(ARPANet) 프로젝트가 원조다. 1969년 10월25일 알파넷 프로젝트팀은 마침내 UCLA와 스탠퍼드대학연구소(SRI)간 호스트 대 호스트 방식의 컴퓨터 접속에 성공함으로써 역사적인 인터넷시대를 열었다. 인터넷은 1990년까지 극소수의 전문가층에서만 사용되다 1993년 앨 고어 미국 부통령의 「정보고속도로」 구상이 발표된 데 이어 1994년 마크 엔드리슨이 월드와이드웹(www)방식의 인터넷브라우저의 개발에 성공하면서 급속하게 확대됐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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