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창간17주년> 디지털 세상의 빛과 그림자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행복할까.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예술가들의 거침없는 상상력은 오히려 디스토피아의 어두운 미래로 치닫는다.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인공부화로 아이들이 태어나는 끔찍한 미래상을 보여준 후 수많은 SF영화와 소설들이 허무와 공포의 색채로 21세기를 그려내고 있다.

 반면 사이버펑크의 대부이자 네티즌 자유 수호자로 불리는 존 페리 발로(John Perry Barlow) 전자프런티어재단(EFF) 공동설립자는 인터넷을 가리켜 『불의 발견 이후 인간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성취』라고 말하며 『디지털 가상공간이야말로 완전한 표현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시켜 줄 인류의 신천지』라고 주장한다. 컴퓨터황제 빌 게이츠도 「미래로 가는 길」에서 정보통신기술이 열어갈 「마찰 없는 자본주의시대」의 달콤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낮과 밤처럼 대조적인 낙관론과 비관론을 대비시키다 보면 디지털시대의 명암은 더욱 뚜렷해진다.

 낙관론자들은 디지털시대가 아테네 시민들이 누렸던 직접민주주의를 모든 인류에게 경험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언론학자 마셜 맥루한의 말대로 정치는 대의(代議)로부터 선거구 전 주민이 참여하는 형태로 바뀌게 된다는 것. 온라인선거에 참여해 마우스를 클릭하는 순간 후보의 당락이 결정되고 국가의 주요정책에 대한 찬반의견이 가려진다. 이처럼 열려 있는 인터넷 환경은 거대기업이든 가난한 실업자든 똑같은 발언권을 보장한다. HTML프로그램에 대한 기본지식만 있으면 누구든 인터넷에 개인방송국을 만들어 하고 싶은 말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은 전자민주주의가 파워 엘리트들의 네트워크 독점으로 오염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통신망을 가진 자가 결국 디지털세계를 지배할 것이며 버튼 하나로 대중을 선동하고 결국 중우정치(衆愚政治)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디지털시대의 기본이념을 다양성과 창조성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산업사회의 사람들은 대량생산의 수레바퀴 아래서 표준화·규격화된 삶을 살았다. 「나인 투 파이브」의 근무형태는 마치 같은 모양, 같은 브랜드, 같은 가격표가 찍혀 지나가는 컨테이너 벨트 위의 상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디지털시대에는 정보통신 기술에 힘입어 백인백색(百人百色)의 라이프 스타일이 가능해진다.

 디지털 뉴스는 독자가 원하는 소식만 배달하고 TV는 시청자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만으로 편성된 방송을 내보낸다. 멀티미디어 에이전트가 신문과 방송을 먼저 보고 취향에 맞는 내용만 골라주기 때문이다. 디지털 의상실에서는 고객에게 어울릴 만한 맞춤옷을 인터넷으로 시뮬레이션해서 보여주고, 사이버 교실에선 주입식 교육 대신 학생의 적성에 맞는 1대1 수업이 이루어진다. 정보의 홍수 속에 헤맬 필요 없이 자신이 필요한 정보만 보고 듣는 「개인중심 시대」가 오는 셈이다.

 그러나 호주의 세계미래연맹 스티븐슨 사무총장은 정반대의 미래상을 얘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똑같은 제복을 입고 국제표준어인 영어로만 말한다. 민족과 국가는 해체되고 대신 강력한 중앙컴퓨터가 인류를 통제한다. 소수의 정보 엘리트들이 0과 1이라는 디지털의 잣대로 보통사람들의 육체와 영혼을 표준화시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는 것.

 인터넷이 정보의 마술램프가 되어 명령만 내리면 빛의 속도로 원하는 정보를 실어 나르는 이상향을 고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한할 수밖에 없는 물질 재화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 분화를 가져왔다면 정보시대는 인터넷에 의해 무제한 정보의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념적인 대립이 필요 없어진다는 것.

 그러나 정보가 풍부해지는 만큼 유효기간이 지난 불량정보가 폐기처분되지 않았을 때는 부작용도 심각하다. 인터넷 검색엔진 알타비스타는 얼마 전 업데이트되지 않은 채 방치된 자료를 조사해 봤다. 95년 이후 손대지 않은 콘텐츠는 42만4000페이지. 이 중 94년부터 지워지지 않은 내용도 7만5000페이지나 됐다. 4년 전의 결혼식 초대장, 3년 전의 동창모임 안내장, 이미 비디오 시장에서도 폐기처분된 영화의 예고편이 웹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정보의 불평등 역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정보시스템의 보유정보와 이용능력에 따라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정보분석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생활 무능력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또 사이버 음란정보에 따른 저질문화의 확산,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도 골칫거리다. 과잉정보가 가져다줄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지적소유권의 남용과 데이터 해적질도 문제다.

 사이버 커뮤니티에 대해서도 명암이 엇갈린다. 낙관론자들은 말그대로 지구촌이 하나의 마을로 묶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시간과 거리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누구나 인터넷 빌리지에 입주해 사이버 이웃을 사귈 수 있게 된다는 것. 또한 사이버 스페이스는 현실세계와는 달리 권력구조를 유지하기 힘들다. 공간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이 네트워크의 세계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규제받지 않는 자유로운 자아정체성을 형성하고 개인주의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익명의 무수한 개체가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하고 파편으로 부서져 디지털 공간을 떠돌 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이나 채팅 중독은 심리적 다중인격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실제 사회나 이웃들과 격리된 채 「가짜 소속집단(False Community)」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다.

 과연 디지털시대의 종착역은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디스토피아일까. 어쩌면 진실은 그 중간쯤에 있을지 모른다. 과학은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축복인 동시에 저주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시대에도 빛과 그림자는 공존한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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