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재산 "제2의 돈"

 지난 7월 모 경찰서에는 좀 특이한 도난신고가 접수됐다. 도난품이 현금이나 보석이 아니라 게임을 통해서 얻은 사이버 망토와 방패였던 것. 신고한 지 씨는 매일 15시간씩 게임을 해서 겨우 모아놓은 점수를 하루아침에 도둑맞았다며 꼭 찾아줄 것을 호소했다. 결국 경찰은 게임제작사와 협조해서 지 씨의 게임 접속 ID를 역추적한 끝에 결국 모 고등학교 3학년 등 2명을 검거했다.

 인터넷 게임이 청소년들 사이에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음에 따라 게임 속의 무기들은 실제 돈을 주고 거래되는 「재산」이 됐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칼이나 망토, 방패 등 사이버 무기는 게임 초보자나 게임방 사업자에게 적게는 수천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끼리는 게임 속의 무기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다. 무기가 있으면 자신의 게임능력을 향상시켜 더욱 쉽게 적들을 물리치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확산되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활동이 늘어남에 따라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디지털 신호가 새로운 재화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는 「0」과 「1」로 이루어진 숫자의 조합일 뿐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억원대의 돈이 오고갈 만큼 중요한 재산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 도메인. 도메인은 단순히 이용자가 해당 홈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사이버 공간의 문패 같은 것이지만 상거래에 인터넷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인터넷 도메인은 현실세계의 상표나 회사이름과 동일시되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쉽고 특징적인 도메인 이름을 먼저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또 「가치있는」 도메인은 천문학적인 액수에 거래되기도 한다. 미국 컴팩사가 알타비스타 도메인인 「altavista.com」을 335만달러라는 거액에 인수했으며 「drugs.com」이란 인터넷 도메인 이름도 약 82만달러에 팔렸다. 각종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 도메인 이름은 중요한 품목중 하나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 최근 한 벤처기업이 개최한 도메인 이름 공모에는 시작 1주일만에 10만여건의 도메인이 접수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사이버 머니도 차츰 그 영향력을 사이버 공간에서 현실공간으로 넓혀가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들이 이용자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사이버 공간에서 좀더 활발하게 활동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사이버 머니 제도는 인터넷 공간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로 자리잡음에 따라 중요한 재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네띠앙, 골드뱅크 등 일부 사이트에서만 제한적으로 도입해 서비스를 제공해오던 사이버 머니는 이제 대부분의 쇼핑몰과 회원제 인터넷 사이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실정. 사이버 머니를 지급하는 기준도 다양해졌다.

 단순히 제품을 구입하는 것에서 벗어나 설문조사 참여, 게시물이나 자료 게재, 동호회 활동 등 네티즌들의 사이버 활동을 일일이 체크해 사이버 머니로 적립한다. 현실세계의 돈처럼 원하는 사람에게 줄 수도 있고 사이버 복권으로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할 수도 있다. 삼성쇼핑몰이나 채널아이처럼 일정한 액수가 되면 아예 현금으로 돌려주는 곳도 있다.

 사이버 공간으로 이용범위를 한정한 경우에도 그 활용범위가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해당 사이트에서만 쓸 수 있도록 하던 것에서 벗어나 각 사이트끼리의 제휴를 통해 사이버 머니를 쓸 수 있는 공간을 넓혀나가고 있는 추세다. 이같은 추세대로라면 일본의 엔화나 미국의 달러화처럼 사이버 공간에만 통용되는 또 하나의 화폐가 등장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자사의 사이트를 이용하는 고객의 데이터베이스도 높은 재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객의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했느냐에 따라 회사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사업전망이 밝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일단 일정한 수의 고객을 확보하면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마케팅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쇼핑몰이나 포털을 지향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회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실세계의 신용도는 부동산이나 직장, 지위에 따라 결정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는 얼마나 성실하게 활동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사이버쇼핑몰에서 쇼핑을 한 후 얼마나 빨리 결제를 했는지 인터넷경매에 물품을 올린 뒤 얼마나 성실하게 경매에 응했는지 등이 하나하나 점수화되어 나의 신용점수에 가산된다. 최근에는 이같은 사이버 공간의 특성에 착안, 현실세계의 재산과 전혀 관계없이 신용도 점수에 따라 현금을 빌려주는 사이버 사채 사이트까지 탄생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도메인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사이버 전당포도 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활용범위가 점점 넓어짐에 따라 디지털 재산의 가치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금까지 측정하기 어려웠던 지식이나 정보, 아이디어가 디지털화되면서 이 무형자산의 거래가 더욱 광범위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같은 사이버 재산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인터넷 게임의 예처럼 사이버 절도가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가치에 기반을 두지 않은 사이버 머니의 난립 등으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 이같은 부작용은 사이버 공간의 영향력이 커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한편에서는 하늘사랑정보가 회원수를 기반으로 1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지만 어렵게 개발한 프로그램은 자산으로 평가되지 못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장윤옥기자 yo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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