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재미있고 신기한 과학이야기 (70);"어린왕자"가 남긴 교훈

 우주시대를 맞아 외계생명체(ET:Extra Terrestrial)를 소재로 한 TV 연속극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ET가 실제로 있든 없든 문화전쟁 시대를 맞이하여 「ET문화」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ET문화가 너무 열악하다 보니 「ET는 백인 아이들이나 만나야 한다」는 식의 절망적 고정관념이 늘 우리 마음 속 깊이 자리잡게 되었다. 만약 한국 어린이가 ET를 만나는 장면이 영화에 나온다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가 돼버렸는지도 모른다.

 이런 답답한 현실을 타파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나라의, 우리나라 주인공에 의한,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과학소설(SF) 작품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처음부터 먼 은하계에서 레이저 검을 휘두르는 국적 없는 작품을 만들어 봐야 외국 작품의 각색이나 아류로 느껴질 뿐 우리 국민의 공감대 형성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KBS2 TV가 5월부터 8월까지 방영한 별 드라마 「어린왕자」는 비록 어린이 프로그램이었지만 우리 고유의 ET문화 구축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는 겉모습이 우리와 똑같은 「딴별 친구」가 우리 아이들과 같이 학교에 다니는 장면을 방영해 우리 아이들에게 ET를 의식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처음에는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한동안 낮은 시청률을 기록, 제작진들을 맥빠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 국민의 별에 대한 관심이 최근 폭등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반드시 오르리라 확신하며 제작진들을 위로했다. 별 축제가 날씨만 좋으면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는 행사로 자리잡은 요즘, 별 드라마가 아이들에게 외면당할 이유는 절대로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한국과학문화재단도 혼신의 힘을 다해 도왔다.

 아니나 다를까,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어린왕자」의 시청률은 2배, 3배로 뛰면서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던 만화영화들의 시청률에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후 6시는 헐값으로 수입된 일본 만화영화들의 각축장」이라는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이 얼마나 신선한 충격인가.

 「어린 왕자」가 남긴 교훈을 되새겨 보자. 이제 우리 어린이들, 나아가 우리 국민들은 여름이 되면 무수히 나타나는 「처녀귀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높은 수준의 ET문화를 갈구하고 있다. 몇년 전 「혜성 축제」의 인파 수만명, 지난해 겨울 유성 우를 보기 위해 그 추웠던 수능시험 전날 밤잠을 설친 국민이 100만명은 되리라는 추측, 「용가리」같은 SF영화가 시도되었다는 것, 「별과 우주」라는 천문학 전문잡지가 창간돼 불과 몇달 사이에 확고한 자리를 잡은 것 등이 그 반증이다.

 이제 「어린 왕자 세대」가 자라면 자연스럽게 한국판 「X파일」도 방영될 것이고, ET와의 전쟁을 담은 만화와 컴퓨터 게임이 넘쳐날 것이며 한국판 「스타워즈」도 극장에서 상영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10년, 20년을 느긋하게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미 시작된 문화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ET와 같은 고부가가치를 담보하는 과학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린왕자」가 99년 우리나라 TV에 방영된 유일한 ET 드라마라는 사실은 슬프기에 앞서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20세기가 마감되기 전에 어린이용이 아닌 일반 ET 드라마를 제작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묻고 싶다. 방송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어린 왕자」의 교훈을 잘 음미해야 한다고 믿는다.

<박석재 박사>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서울대 천문학과, 미국 텍사스대 졸(천문학박사)△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초대회장 △저서 「재미있는 천문학 여행」 「코리안 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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