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생산대국 "필리핀" 예약

 필리핀이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세계적인 반도체업체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면서 필리핀은 농업생산국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첨단산업국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인텔,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 암코 테크놀로지 등 해외 반도체업체들이 속속 몰려들면서 이 나라의 경제에도 활기가 돌고 있다.

 지난 3년간 이들 해외 반도체업체가 필리핀에 투자한 규모는 약 50억 달러. 올해는 6억 달러의 투자가 예정돼 있다.

 이처럼 해외 반도체 투자가 몰리면서 필리핀은 다른 아시아 국가가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동안에도 상대적으로 안정된 성장을 보여왔다.

 지난해 이 나라의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제품의 수출액은 200억 달러로 전년대비 33% 늘었다. 이는 필리핀 전체 수출액의 70%를 차지하는 엄청난 액수다.

 더욱이 시장 전문가들은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오는 2004년엔 필리핀의 반도체·전자 수출액이 480억 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필리핀이 이처럼 해외 반도체업체의 투자 유치에 성공, 첨단제품 수출국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은 세계시장의 환경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가격경쟁으로 인한 반도체와 컴퓨터의 저가화 추세는 이들 제품 생산업체에 비용 절감을 강요하고 있으며 그 결과 세계 주요 반도체업체들이 값싸고 질좋은 노동력을 찾아 이 나라로 속속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필리핀은 교육 열기가 높아 한 해 3만∼4만명의 엔지니어를 배출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영어 구사가 가능하고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반면, 임금수준은 말레이시아 등 주변국에 비해 30% 이상 낮아 생산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로 생산거점을 옮기려는 미국과 유럽 반도체업체들에겐 이 나라가 투자 안성맞춤 지역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인텔은 최근 5억 달러를 투자해 최신 펜티엄Ⅲ 등 자사의 주요 제품을 조립생산하는 공장을 이 곳에 건설했다.

 이곳에 이미 세 개의 조립공장을 갖고 있던 암코는 최근 이 중 한 공장의 설비를 확장하고 생산능력을 크게 늘렸다.

 TI도 지난 97년 이래 4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지속적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하면서 필리핀을 디지털신호처리칩(DSP)의 생산거점으로 삼고 있다.

 이밖에 사이프레스 세미컨덕터, 아날로그 디바이시스 등 상당수의 미국 반도체업체들이 이곳에 진출해 있다.

 필리핀에 진출한 이들 해외업체는 이 지역의 반도체 산업이 다른 나라에 비해 출발은 늦었지만 우수한 노동력으로 인해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며 대체적으로 만족을 표시하고 있다.

 인텔 필리핀 공장의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이곳의 생산성이 자사의 말레이시아나 애리조나 공장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고 전했다.

 다른 지역과 비슷한 생산성에 낮은 임금이 주는 매력은 인텔이 이곳에서의 생산 확대를 위해 최근 5년간 인력을 3배 가량 늘린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현재 인텔이 고용하고 있는 필리핀 현지 인력은 6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필리핀은 그러나 아직은 동남아 반도체 조립생산 거점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 넘어야 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은 해외업체의 지속적인 투자 유치를 위해 생산 인프라에 대한 더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할 것이란 지적이다.

 예를 들어 이 나라의 전력 사정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고 품질이 떨어지는 데다 요금도 비싼 편이어서 불만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또 도로와 통신 등 사회간접시설이 부족해 불편하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말레이시아·태국·중국 등 이웃 국가들도 해외 첨단산업 유치에 적극 나서면서 필리핀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특히 중국은 필리핀보다 임금수준이 낮아 많은 해외기업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필리핀이 이같은 안팎의 도전을 헤치고 새로운 반도체 산업의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오세관기자 sko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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