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없던 옛날에도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함무라비 법전을 돌기둥에 새겼던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인들은 진흙판 위에 글씨를 써서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클레이 태블릿이란 뾰족한 펜으로 쐐기모양의 설형문자를 새긴 후 불에 구운 점토판이다. 그런가 하면 로마시대 호민관들은 진흙 대신 초를 얇게 펴바른 나무판을 사용했다. 또 중국의 무림호걸들은 대쪽에 글씨를 새겨 가죽끈으로 묶거나 명주를 두루말이로 말아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
오늘날과 같은 종이책이 등장한 것은 후한시대 채윤(88∼105)이 종이를 발명한 이후부터. 이제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지난 1000년을 지배했던 종이책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e북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전자책이 「아톰이 아니라 비트로 읽는 책의 시대」를 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e북은 언뜻 PDA를 연상시키는 일렉트로닉 디바이스. 크기는 딱 문고판 소설책 정도로 지하철이든 공원벤치든 가져갈 수 있다. 작은 디스플레이가 달려 있어 버튼을 누르면 한 페이지씩 책장이 넘어간다. 여기에 종이책으로 치면 대략 10권 정도의 콘텐츠가 담긴다.
가장 먼저 선보인 전자책은 실리콘밸리의 벤처업체 누보미디어(NuvoMedia)가 내놓은 로켓 e북(Rocket eBook). 쓰리콤 오거나이저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으로 언뜻 보면 PDA와 닮았다.
소프트북 프레스사의 소프트북은 훨씬 호사스러운 느낌을 주는 전자책. 언뜻 보면 가죽 커버가 달린 고급액자처럼 보인다. 무게가 로켓 e북 보다 2배 이상 무겁고 스크린도 크다. 빌트 인 모뎀을 갖춰 PC가 없는 환경에서도 전화선 잭에 연결만 하면 텍스트와 그래픽을 다운로드받는다.
그밖에 가장 가볍고 값도 싼 리브리우스(Librius)의 밀레니엄 리더를 비롯해 13인치 LCD 스크린과 빌트 인 모뎀을 갖춘 대형 전자책 에브리북(Everybook) 등이 있다.
기술평론가들은 대체로 e북이 가볍고 작고 읽기 편한 전자책이라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준다. 사실 전자책의 개념은 구텐베르크 이후 다시 한번 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혁명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e북을 좋아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자책은 현재로서는 첨단기술에 열광적인 이른바 「테크노필(Technophiles)」들의 값비싼 기호품에 불과하다. 하지만 e북 제작자들은 전자책이 언젠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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