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정부 출연연구소의 위상

 만약 북한에서 대포동 미사일을 쐈다 치자. 그래서 우리도 미사일의 개발이 시급해졌다면 이 일을 맡길 기관은 과연 어디일까. 교육과 기초과학의 증진을 목표로 하고 있는 대학에 조직적이고도 전략적으로 수행돼야 하는 이러한 과제를 맡길 수 없다. 이윤의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의 연구소에 맡길 일은 더 더욱 아니다. 정부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출연한 정부출연연구소밖에는 대안이 없다.

 몇 해 전부터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원들이 대학의 교수로 가거나 기업의 연구소로 직장을 옮기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점점 심화돼 현재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들의 사기는 지극히 저하돼 있다. 이들이 직장을 옮기는 것은 단지 봉급이 적어서가 아닐 것이다. 과학자들에게는 봉급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다.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출연연구소별로 선을 분명히 그을 필요가 있다. 정부출연연구소가 기초과학이나 산업현장 밀착적 연구에 집중해서는 안된다. 정부출연연구소의 장비나 연구원이 아무리 우수하다 하더라도 기초과학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박사급 전문인력의 74.8%를 차지하고 있고 수십만명에 달하는 대학원생들을 보유하고 있는 대학과는 애당초 경쟁이 안된다. 현장 밀착적 연구에 대해서는 기업의 사활을 걸고 연구하는 기업연구소를 당할 수 없다.

 정부출연연구소는 전략적 연구 및 집중적이고도 선택적인 연구투자가 필요한 거대과학 등에 대한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위상의 정립이 우선 마련돼야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정부출연연구소들은 대학과 기업과의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다음으로 기능직 직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돼야 한다. 연구소의 임원들에게는 행정직 인원이 중요하나 연구자들에게 기능직 직원은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마지막으로 전략적 연구란 시대적 요청에 의해 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출연연구소들은 유연성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더 이상 획일적인 잣대에 의한 평가방식을 버려야 한다. 예를 들어 국민의 세금이 투자됐다고 하여 고가 장비의 활용이 활발하지 않을 때 담당연구원을 마치 죄인 다루듯이 해서는 안되며 더욱이 PBS, 즉 연구과제의 수탁으로 유지·보수 및 운영하라는 것은 연구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일이다.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원들은 그들이 수행하는 모든 연구가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모든 연구에 나라를 위한다는 마음이 새겨져 있어야 한다. 이들의 연구는 대학의 그것과 다르며 기업연구와는 더욱 다를 수밖에 없다.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원들이 과학자적 양심을 버리고 국고로 사들인 장비를 방치한다거나 집단 이기주의적 과제의 창출을 통한 연구소간의 소모적 경쟁 등은 하루빨리 종식돼야 한다. 더욱이 최근에 문제시되고 있는 정부출연연구소와 관련기업간의 밀착관계는 대기업과 협력업체간의 유착관계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다. 후자가 경제의 발전에 치명적인 저해요인이라면 전자는 이 나라 과학기술의 발전을 저해하고 과학기술의 산업화 사기를 떨어뜨리는 독소가 된다.

 초등학생들이 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원이 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무한기술경쟁의 시대를 맞아 한 국가의 전략적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원들에게는 특별한 대우가 주어져야 한다. 그래야 그 나라의 과학이 산다. 지금과 같이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원들이 대학교수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그대로 방치하면 안된다. 이 나라의 장래를 짊어질 어린이들이 이 다음에 커서 대학교수가 될 꿈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대학교수라는 직업보다는 연구소의 연구원이라는 직업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승기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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