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자동화 장치는 앞으로 필요할 것이며 전망이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80년대 초기만 하여도 그것을 판매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자동화 붐이 일기 시작했다. 자동차 부속품에서부터 일반적인 주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공장 시스템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데도 활용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소프트웨어는 내가 개발한 것과 달랐다. 그것은 통제의 효용성에서 차이가 난 것이 아니고 프로그램의 구조에서 차이가 났던 것이다. 무엇보다 가격에서 현저한 차이가 났다.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하여도 가격이 싸다면 경쟁력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프로그램을 일본 공장에 판매하는 것을 생각했다. 그것은 구로공단을 다니면서 제품을 팔 때 느꼈던 중대한 사실이었다.
공장 가운데는 일본에서 기계를 가져와서 자동화한 곳도 있었다. 그때 사용되는 시스템은 아주 비싼 가격으로 들여 왔고, 사용하기에 매우 복잡했다. 단순하면서도 통제 기능이 효율적이고, 그러면서 가격이 싸다면 경쟁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기계는 일본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진출해 있는 기계를 제작한 일본 회사 카탈로그를 들고 일본으로 날아갔다. 군에 복무할 때 미국을 비롯한 중남미를 다닌 일이 있지만, 일본을 방문하기는 처음이었다. 미국 다음으로 실리콘밸리의 호기심을 자극한 곳이 일본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찾아간 회사는 섬유기계를 만드는 다이묘 주물공장이었다. 제품을 소개하는 카탈로그에 보면 본사가 동경 히라주쿠에 있었다. 공장은 동경 에도가와구의 아라카와 강변에 있었고, 또 다른 공장은 요코하마에 있었다. 나는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히라주쿠에 있는 다이묘 본사 연구소 직원과 통화를 했다.
그와 약속했기 때문에 공항에 내리자 마중을 나와 있었다. 후쿠오카 연구원이라고 하는 그 사람은 공항 도착 로비에서 「한국 최영준(韓國 崔英俊)」이라는 한문 글씨의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었다. 나는 일본의 컴퓨터 원서를 읽기 위해 일본어를 배운 일이 있지만, 실제 일본인과 대화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영어를 처음 활용하며 미국인과 대화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영어는 단어를 알아도 그 발음이 귀에 익지 않으면 대화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일본어는 발음을 잘못 들어 이해하지 못하는 실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후쿠오카와 악수를 하면서 서로 명함을 교환했다. 그는 서른살 중반으로 보이는 나이였는데, 연구소의 중간 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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