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슨의 이민화, 미래산업 정문술, 비트컴퓨터 조현정. 이들 3인의 공통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벤처기업을 이끈 주역이란 점을 꼽을 수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언제나 「벤처 1세대」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이 따라다닌다.
최근에는 1세대 벤처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2세대 벤처기업인」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우선 지난 97년 상장한 PCS 제조업체인 팬택의 박병엽 사장과 무선 데이터 통신업체인 CNI의 이순 사장, 그외 택산전자, 시공테크, 씨앤에스테크놀러지, 기산텔레콤, 제이스텍 등을 이끄는 경영진들도 올해 안에 코스닥 등록을 추진하고 있는 벤처기업가들이다.
그러나 최고경영자들이 드라마의 주연이라면, 무대 뒤에서 이들의 배역과 연기를 감독하는 사람들도 있다. 회사를 설립한 경영자들이 제일 먼저 찾아가는 벤처 캐피털리스트가 바로 그들이다.
벤처 캐피털리스트란 유망한 벤처기업에 투자한 후 이들이 코스닥 등에 등록할 때 주식을 팔아 수익을 남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며 현재 국내 80여개 창업투자회사에서 이러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벤처 캐피털리스트의 숫자는 400여명에 달한다.
이등 중에서 최근 한국아이티벤처투자라는 창업투자 회사를 설립한 연병선 사장(47)은 우리나라 벤처 캐피털리스트 1세대로 지금도 후배 못지않게 왕성한 투자활동을 벌이는 벤처 캐피털리스트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 81년부터 약 15년 동안 국내 최대 신기술투자전문회사인 종합기술금융(KTB)의 심사역으로 일하면서 일찌감치 메디슨과 다우기술의 성장가능성을 간파, 회사설립 단계에서부터 거액의 자본금을 투자함으로써 이들 기업이 자금부족 등 창업초기의 어려움을 쉽게 극복하고 우리나라 대표적인 벤처기업으로 발돋움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이들 기업이 지난 95년부터 국내 증권 또는 코스닥시장 등에 잇따라 상장되면서 KTB측에 원금의 수십 배에 달하는 투자수익을 안겨줌으로써 여의도 금융가에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내 신기술 및 창업투자회사 직원들은 흔히 연 사장을 일컬어 「미다스의 손을 가진 사나이」라고 치켜세우며 부러움을 표시하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평가를 뒷받침하는 벤처투자 성공사례는 무수히 많다. 우선 연 사장이 직접 투자결정을 한 기업만도 총 30여개에 달할 뿐더러 또 이들 중에는 팬택, 서울시스템, 케이씨택, 영원통신 등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유망기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벤처업계에서 성공한 벤처 캐피털리스트 제1호로 통하는 그가 안정된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지난해 「한새벤처투자」를 설립,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관련업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무한기술투자의 이인규 사장(40)의 활약도 돋보인다. 그는 지난 97년부터 소프트와이즈, 네띠앙, ZOI컴, 디지털임팩트, 한글과컴퓨터 등 13개 소프트웨어 및 인터넷 회사들에 투자했던 경험을 살려 최근 전자상거래 등의 분야로 투자를 크게 확대함으로써 관련분야 벤처기업들의 젖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회사는 또 최근 회원 10만명을 거느린 국내 최대 여성종합 포털사이트인 코스메틱랜드에 12억원을 투자한 것을 비롯해 현재 10여개 전자상거래 관련업체와 투자조건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인규 사장은 『지금까지 13개 업체에 약 300억원을 투자했으며 올해말까지 약 20개 업체에 500억원을 더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이 사장이 투자한 것 중에 지난해 도산 직전단계까지 몰렸던 한글과컴퓨터에 벤처기업협회와 공동으로 100억원을 투자, 회사를 회생시킨 것은 벤처투자의 묘미를 보여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한글과컴퓨터의 경영이 정상을 되찾으면서 투자에 참여한 사람들도 불과 1여년 사이에 3∼4배에 달하는 막대한 투자수익(평가액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사장은 또 지난 5월 코스닥에 등록한 세인전자와 오는 9, 10월에 잇달아 등록할 와이드텔레콤과 네띠앙에서도 각각 5∼10배 정도의 투자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LG창업투자의 장만준 이사(39)도 소프트웨어 전문 캐피털리스트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그가 지난 89년 한국기술투자(KTIC)에 근무할 때 투자한 5억원은 당시까지만 해도 만성적인 자금부족에 시달리던 메디슨이 크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으며, 또 96년 21억원을 투자한 한글과컴퓨터도 그의 투자유치를 계기로 코스닥에 등록하는 데 성공했다.
KTIC도 장 이사의 투자로 많은 투자수익을 올렸다. 메디슨에 10억원을 투자해 120여억원을 벌었으며 한글과컴퓨터도 50억원의 이익을 냈다. 한글과컴퓨터에 대한 투자는 국내 벤처 캐피털이 소프트웨어 업체에 투자한 첫번째 케이스로 꼽힌다. 『당시만 해도 소프트웨어 업체는 투자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기계나 공장도 없고 부동산도 없는 벤처기업에 40여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하니 회사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겨우 경영진을 설득해 21억원을 투자했는데 결과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안겨줬습니다.』
장 이사가 LG창투로 자리를 옮긴 것은 이 회사가 설립된 직후인 지난 96년 9월. 그는 그후 이곳에서 기술력 있는 소프트웨어 업체를 발굴, 투자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동안 그가 LG창투에서 투자한 회사만도 웹 저작도구 회사인 한백정보통신을 비롯해 사이버다임, 디지픽스,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 건잠머리 등 20여개에 달한다.
한국기술투자(KTIC) 박동원 부장(39)은 캐피털리스트 업계에서 알아주는 「의리파」로 통한다. 벤처기업과 한번 깊은 협력관계를 맺으면, 끝까지 밀어준다는 것이다. 그는 IMF 한파가 금융계를 강타, 그가 몸담고 있는 KTIC의 자금사정도 어려워졌지만 오랜 협력관계를 맺고 있던 CNI(대표 이순)가 자금지원을 호소하자 전환사채 6억원을 인수한 것을 포함해 모두 16억원을 조달해 줌으로써 「의리파」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번 과시했다.
박 부장은 지난 90년 통신단말기 전문업체인 CNI를 발굴, 약 4억5000만원을 투자하고 97년 초 성공적으로 코스닥에 등록시킴으로써 10배 이상 수익을 올린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피코소프트, 신광전기, 키스크 등 20여개에 달하는 벤처기업에 투자,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주위 동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이 밖에 종합기술금융(KTB)의 강택수 전자팀장(40)도 국내 벤처 캐피털들이 주목하는 승부사다. 그는 지난 85년 KTB에 입사한 후 지금까지 벤처투자 외길을 걸으면서 3개 회사를 상장시키는 외에 코스닥에 등록한 회사가 13개사이고 또 나머지 10개사도 올해 안에 코스닥에 새롭게 진입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투자하는 기업이 모두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아니다. 연병선 사장이 지난 86년 19억원을 투자한 에어로시스템은 만성적인 적자를 낸 끝에 94년 인켈에 인수되는 비운을 맞았다. KTB는 이때 그동안 투자한 원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한 것은 물론 23억원에 달하는 융자금을 탕감해 줘야 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좋은 승부사가 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서기선 기자 ks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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