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부, "암호촉진법" 제정 중단

 정보통신부가 민간부문의 암호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추진해 오던 가칭 「암호이용촉진법」 제정 작업을 최근 갑작스레 중단한 것으로 10일 알려졌다.

 정통부의 당초 계획으론 이달안에 입법예고를 거쳐 오는 10월 정기국회에 상정한 뒤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지금까지의 법제화 작업을 전면 보류했다는 것이다. 특히 민간 암호이용촉진법은 정통부가 국가정보원 등과의 심각한 진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줄곧 관철시키고자 한 사안인데다 최근에는 양 부처가 법제화하는 데는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정통부의 일방적인 중단선언은 각계의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배경=결론부터 말하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통부의 정치적 고려가 크게 작용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정통부 관계자는 『암호이용법에 명시될 「키복구제도」는 그 불가피성 여부를 떠나 시민단체 등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것이 불보듯이 뻔한 사안』이라면서 『암호문제가 아직은 여론의 관심영역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상황에서 굳이 공론화를 통해 부담을 초래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섣부른 정책적 판단으로 여권의 총선 전략에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의도다.

 이에 따라 지금은 그동안 암호이용법의 제정 자체에 극히 소극적이던 국정원이 오히려 법제화를 앞당기자며 정통부를 재촉하는 형국이다. 암호이용법에 의해 키복구제도가 명문화될 경우 국가적인 차원의 암호키 감시·관리체제는 합법적 근거를 얻게 돼 국정원으로서는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과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키복구제도=암호이용법의 핵심은 키복구제도다. 키복구는 원래 개인의 비밀 키로만 해독할 수 있는 암호데이터를 「제한적」인 경우에 한해 정부기관 등이 합법적인 절차로 접근할 수 있는 기술 및 체계를 말한다. 여기서 제한적인 경우란 개인이 비밀 키를 잃어버렸거나 사망으로 상속이 불가피한 때, 공익·국가안보 차원에서 필요한 때 등을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전자상거래(EC) 등 개방형 정보통신망 환경에서 민간 암호사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며 이를 법률로써 통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이번 정통부의 암호이용법은 결국 암·복호화 키의 관리체제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키복구제도가 사이버 공간에서 정부기관 등에 의한 심각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정통부로선 행정자치부가 전자주민카드를 도입하고자 법제화까지 했다가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에 밀려 끝내 보류시킨 사례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응=주위에서는 정통부가 향후 사이버 사회의 신뢰확보를 위한 기술기반인 암호관련 법규를 제정하면서 정략적 차원에서 정책을 입안하거나 보류한다는 데 실망감이 크다. 암호이용 확산과 이에 따른 국가적 차원의 암호 키 관리제도 마련이 불가피하다면 조기 공론화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고 바람직한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보보호업계 관계자는 『정통부가 암호이용법의 필요성을 역설하다 불과 1년도 채 안돼 어물쩍 넘겨버린다면 국민이 신뢰감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경묵기자 kmkim@etnews.co.kr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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