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다국적기업의 역사는 외자도입법이 제정된 6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앞서 정부는 61년부터 외자도입촉진법 등을 통해 경제개발에 필요한 외자를 쉽게 끌어다 쓰긴 했으나 대부분 금융부담이 높은 차관의 성격이어서 문제가 많았다. 그러니까 외자도입법은 금융부담이 적은 100% 또는 합작투자 기업유치를 위해 제정된 법이라 할 수 있다. 이때 국내 진출한 대표적 다국적기업들로는 페어차일드·시그네틱스·모토롤러·IBM 등이 있다.
정부는 70년대 이후에도 마산수출자유지역을 개방하고 노동관련법의 예외적용, 세제감면 등 엄청난 특혜를 주며 다방면에 결쳐 되도록 많은 다국적기업을 유치해갔다. 다국적기업들은 정부 의도대로 경제성장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파격적 특혜조치는 일반의 반 다국적기업 정서를 불러일으켰다. 실종된 기업시민정신과 반 다국적기업 정서가 맞붙어 촉발된 70년대 말의 「컨트롤데이터 사건」, 80년대의 「한국TC전자 사건」 등은 다국적기업들의 속성이 어떤 것인가를 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듀퐁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개발도상국에서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자금조작과 환투기 등을 일삼아 여론의 질타를 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다국적기업들의 시각이 바뀐 것은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국적보다는 기업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이들이 기업시민으로서 역할강조나 이윤의 현지국가 환원과 같은 노력을 병행해갔다. 경영전략도 과실송금에서 재투자주 우선주의, 본사중심 경영에서 현지법인중심 경영 등으로 대폭 수정했다. 적극적인 투자와 현지화를 통해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려는 몸부림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에서 다국적기업에 대한 진가가 다시 확인된 것은 IMF이후다. 물론 그 성격은 과거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긴 하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점은 분명히 있다. 어딘가 모르게 옹색해지는 다국적기업에 대한 우리의 수동적 자세다. 아직도 여전한 반 다국적기업 정서는 바로 그들에 대해 능동적이지 못하는 우리 자세를 스스로 자인하는 데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현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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