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통합(SI)업체들이 다시 날개를 펴고 있다. 그 대상은 더 이상 한반도가 아니다.
그동안 국내 SI업체들은 수천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면서도 이의 99%를 국내에서 달성했다. 대부분의 국내 산업이 수출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키워온 반면 SI산업만은 20년이 넘게 내수에만 의존해온 형태로 발전한 것. 그러나 올해를 기점으로 SI산업도 더 이상 우물안 개구리에 머물러 있지 않을 작정이다.
낭보는 베트남에서 들려왔다. 현대정보기술이 베트남 중앙은행(SBV)과 총 1300만 달러(약 160억원) 규모의 중앙은행 지급결제시스템(InterBank Payment System) 구축사업에 대한 정식계약을 체결했다. 비록 당초 일정보다 3개월 가까이 계약이 미뤄졌지만 국내 SI업체가 해외에서 수주한 첫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라는 것과, 토종 정보기술은 물론 국내 금융제도의 해외 이전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현대정보기술의 이번 수주는 다른 국내 업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도 국내 업체들에 자신감을 심어줬다는 평가다. 현대정보기술은 이 프로젝트와 연계해 하반기중 입찰 실시 예정인 3500만 달러 규모의 5개 베트남 은행전산망 입찰에도 참가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이를 통해 올해중 해외수출로만 50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SI프로젝트 해외수출로 13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려 수출시대를 개막한 삼성SDS는 최근 500만 달러 규모의 인도 파이프라인 관리 SI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 올 상반기에만 1000만 달러 이상의 수출액을 올렸다.
삼성SDS의 인도 SI프로젝트는 총길이 113㎞ 송유 파이프라인의 원격감시제어시스템(SCADA) 및 감시제어센터, 텔레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인근 중동지역에도 SI프로젝트를 수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회사는 올해 해외에서 최소 20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포스데이타도 지난해 인도 타타제철소의 생산관리시스템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주한 데 이어 최근 야드자동화 프로젝트를 수주함으로써 해외사업에 활기를 띠고 있다. 해외 진출방법도 용역개발 중심에서 벗어나 부가가치가 높은 컨설팅 분야로 확대할 예정이며 기존에 개발완료한 패키지 상품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진출 국가는 동남아 중심에서 중국·미주지역으로 확대했다. 특히 말레이시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가 정보화 프로젝트인 MSC는 포스데이타가 눈독을 들이는 시장. 이를 위해 내부적으로는 해외 마케팅 전문인력을 대폭 보강하고 현지업체와의 전략적인 제휴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쌍용정보통신은 지리정보시스템(GIS)을 비롯해 텔레컴·CTI·인트라넷 그룹웨어 등 특화 SI솔루션의 동남아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로 상반기에 추진했던 프로젝트 중 방글라데시·리비아 등에서 3, 4건이 성사단계에 이르고 있다. 쌍용정보통신은 올해 지난해보다 3배 이상 늘어난 85억원의 매출을 해외에서 달성할 계획이다.
합작기업이라는 점 때문에 수출에 나서지 못했던 LGEDS시스템은 합작사인 EDS로부터 수출을 해도 좋다는 언질을 받았다. 물론 EDS가 수주활동을 벌이지 않는 프로젝트라는 단서가 붙었다. 이 회사는 올해 처음으로 300만 달러의 매출을 해외에서 올린다는 전략이다.
이처럼 SI업체들이 수출을 적극 추진하는 것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계열사 전산망 운영(SM)의 비중이 점차 작아질 수밖에 없어 지속적인 매출 확대를 위해서는 수출시장 개척이 필수과제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또 해외 수주가 자체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도 한몫을 하고 있다.
물론 수출이 활성화되기까지 극복해야 할 여러 난제가 있다. 국내 SI업체들이 자체적인 패키지 솔루션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업계에서는 자체 패키지 솔루션 없이 근본적으로 해외에서 가격·기술 면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자체 솔루션 확보 및 패키지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이의 일환으로 해외 업체와의 제휴도 서두르고 있다.
사실 SI업체가 수출을 시도하게 된 것은 IMF 환경이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90년 이후 꾸준한 경기호황세에 힘입어 연간 40%가 넘는 급팽창을 거듭해온 국내 SI산업은 지난해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러한 상황은 치열한 경쟁을 야기했고 결국 20여개가 넘는 회사가 문을 닫아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국내 SI업체에 여러 가지 화두를 던져놓았다. 「어떤 방법으로 안정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낼 것인가」 「덩치불리기에만 급급했던 SI사업을 수익성 있는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가 대표적인 과제.
해결책으로 찾은 것은 수출시장 개척과 내실경영. 대부분의 SI업체들이 지난 한해를 체질개선과 내실경영이라는 목표 달성의 기회로 삼았다. 이러한 노력은 올 상반기에 결과로 나타났다. 적자에 허덕이거나 거의 적자를 면하는 데 만족했던 대부분 SI업체들이 커다란 매출신장과 적지 않은 수익을 기록했다. 맏형격인 삼성SDS는 상반기 매출은 500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6% 가량 늘었지만 경상이익은 상반기에만 지난 한해 수치인 250억원을 초과한 296억원을 기록했다. LGEDS시스템은 올 상반기에 1976억원의 매출과 86억원의 경상이익을 올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1%, 89%의 성장세를 보였다. 쌍용정보통신도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 증가한 1410억원, 경상이익은 9배 가까이 늘어난 45억원을 달성했다. 현대정보기술은 일부 비주력사업을 정리했음에도 올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약 20% 증가한 2092억원을 기록했다. 이밖에 SKC&C는 지난해 12월 대한텔레콤과의 합병을 계기로 올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3% 늘어난 1600억원을 기록했다.
이러한 추세는 특화 SI업체도 마찬가지. 포스데이타는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보다 122억원 늘어난 860억원을 올렸으며 경상이익도 87% 증가한 28억원을 기록했다. 코오롱정보통신은 50억원이 넘는 순익을 내 수익률이 매출의 7%대에 이르고 있으며, 효성데이타시스템은 창사이래 처음으로 흑자를 달성했다. 농심데이타시스템은 매출액의 경우 전년 대비 30% 증가한 250억원을, 수익은 15억원을 달성했다.
매출증가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정부가 통신·신공항·지리정보시스템(GIS) 등 공공부문 사업에 전체 예산의 60%를 상반기에 집중한데다 금융부문의 인터넷뱅킹·사이버마케팅 시스템 도입 등 신규 수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상이익 폭의 확대는 무엇보다도 SI업체들의 내실경영에 힘입은 바 크다. 대부분의 SI업체들이 지난 한해 실시한 인원감축과 비주력사업 정리, 증자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 등의 내실경영체제가 바탕이 됐음에는 이견이 없다.
이와 함께 지난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소 규모의 SI업체들이 도태되고 해외 업체들의 국내 시장 진출에 따라 국내 업체간의 과당경쟁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도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올 하반기에는 내실경영체제를 다져온 업체와 그렇지 못한 업체와의 명암이 극명하게 대비될 것으로 보인다. 대형 SI 10대 기업들은 시장장악력을 더욱 확대, 시장점유율을 지난해보다 5% 가까이 늘어난 55%로 과점하고 나머지 100여개 업체들이 45%를 가지고 이전투구하는 양상이 예상된다. 소규모의 SI업체나 기술습득에 뒤처진 기업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질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또 해외 유수업체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지멘스·C&C·IBM·왕글로벌·플래티늄테크놀로지·유니시스 등 국내에 진출한 해외 유력 IT업체들의 움직임도 올해 더욱 빨라지고 있다.
내년부터 본격 개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 아웃소싱 시장진출을 위해서다. 특히 한국IBM은 하드웨어 기술의 강점을 내세워 대한항공과 아웃소싱 계약을 체결하는 등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9월 세계적인 컨설팅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및 외국 파이낸싱회사가 데이콤에스티의 경영권을 인수한 데 이어 최근 대우정보시스템이 미국계 홍콩회사인 KNC인터내셔널에 250억원에 매각되는 등 M&A가 점차 현실화되는 추세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 SI업체의 임원은 『앞으로 2∼3년 안에 SI 시장판도는 더 이상 국내 업체간 경쟁구도를 허락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발 5대 SI업체나 중견업체간 편가르기도 무의미해질 것』이라며 『내실경영체제의 확립과 해외 시장 개척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회사만이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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