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 비디오 녹화기(PVR: Personal Video Recorder)라고 알려진 새로운 전자제품은 근본적인 특성에 있어서는 기존의 VCR(Video Cassette Recorder)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미국의 메이저 TV 네트워크사와 광고대행사의 간부들은 이 제품이 TV산업의 경제적 구도를 완전히 재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PVR의 기능과 앞으로의 잠재력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의미심장한 변화가 올 것이라는 온건파에서부터 50년 동안 존재해 왔던 전통적인 TV시대가 마침내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급진파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기술을 개발한 ReplayTV와 Tivo 등 두 회사는 이 제품이 앞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는 주장을 주저없이 한다. PVR는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와 유사한 장치를 이용해 최대 30시간분의 TV 프로그램을 저장할 수 있고, 동시에 많은 프로그램들을 녹화할 수 있다. 이 기계는 개인적인 선택과 취향에 따라 프로그램 시청 스케줄을 조직함으로써 사람들이 TV에 대해 보다 많은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든다. 즉, 시청자들은 방송사들의 미리 짜여진 프로그램 편성표에 구애됨이 없이, 자신이 보고 싶을 때,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PVR는 광고 건너뛰기를 매우 용이하게 하기 때문에 대부분이 상업 네트워크인 미국 방송사들의 주된 수입원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월트디즈니 산하 네트워크인 ABC의 로버트 아이거 회장은 『ReplayTV와 Tivo가 TV산업에 매우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광고회사 영&루비캠의 브루스 벤손 기업전략 담당 부사장은 『PVR가 사람들의 시청 습관을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 보급되면, TV업계는 급속하게 변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PVR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는 포레스터 리서치사의 버노프는 『나는 네트워크 텔레비전의 종말을 선언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0년 내에 미국 가정의 80%가 PVR를 보유하게 될 것이고, 광고 시청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결과 제작비를 충당할 만한 광고 수익이 없어진 무료 네트워크 채널들에는 소위 「찌꺼기」 프로그램들만 남겨질 것이고, 대형 스튜디오나 프로그램 크리에이터들이 제작한 고급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에게 유료(pay per view)로 팔릴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러나 네트워크에 암울한 전망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네트워크 간부들은 이 기계로부터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특별 제작한 프로그램을 수 시간 동안 녹화할 때나 새로운 디지털 채널들을 위해 PVR를 잘만 활용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또 다른 문제는 ReplayTV와 Tivo측이 사람들의 TV 시청 습관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시청자들은 직접 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르는 수동적인 성격을 지녔거나, 새롭고 예기치 않은 프로그램들을 그저 사냥하듯이 찾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PVR의 장래를 무엇보다도 불투명하게 만드는 상황은 ReplayTV와 Tivo가 네트워크 방송사들과 전략적인 제휴를 원하고 있다는 데 있다.
현재 네덜란드의 로열 필립스 일렉트로닉스사에게 제품 제작을 맡긴 Tivo는 이미 NBC와 지분 계약을 체결했고, 다른 네트워크들과의 합작도 원하고 있다.
네트워크의 입장에서 가장 걱정되는 일 중 하나는 ReplayTV와 Tivo가 광고주들과 직접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PVR를 통해 재생되는 하드디스크에 이미 저장된 코카콜라 광고가 등장하게 된다. 네트워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ReplayTV와 Tivo가 각각 개발에 성공한 PVR가 앞으로 얼마나 팔릴 수 있을지,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잠재력을 얼마나 현실화시킬 수 있을지 아직은 단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 다만 기존 TV 환경에 익숙해 온 사람들에게 PVR는 분명 태풍의 눈으로 작용할 것이다.
<자료 제공:방송 동향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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