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기관고유사업비가 샌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인 A연구소는 올해 초 지난 한해 동안 실시한 기관고유사업에 대한 자체 평가회를 가졌다. 이날 평가회에서 발표되고 평가받은 과제는 40여개였지만 연구과제당 연구성과 발표와 평가를 받는 데 걸린 시간은 15분에 불과했다. 그만큼 발표자는 발표자대로 연신 보고서 넘기기에 바빴고 평가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깊이있는 질문을 애써 피했다. 이날 발표된 대부분의 과제가 기관고유사업비를 추가로 받아 현재 연구중이다.

 형식으로 흐르고 있는 기관고유사업의 허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출연연의 특성화 내지는 일류화를 위해 정부가 조건없이 출연하고 있는 기관고유사업비가 일부 나눠먹기식 과제 배분으로 엉뚱하게 새고 있다.

 출연연 기관고유사업비는 출연연이 연구과제중심제(PBS)체제로 자칫 놓치기 쉬운 창의적인 장기연구과제를 나름대로 선정, 연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전액 지원하는 연구비이며, 출연연 기관장들이 전권을 가지고 쓸 수 있어 그동안 줄기차게 이를 늘려달라고 외쳐왔다. 다시말해 각 출연연이 정부로부터 안정적인 연구비를 지원받아 출연연의 특성에 맞는 연구테마를 찾아 미래지향적인 연구를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데 사용돼야 한다.

 올해 과학기술 관련 21개 출연연에 기관고유사업비로 투입되는 예산은 참여연구원의 인건비·재료구입비 등 직접연구비, 행정지원인력 인건비 및 기관공통운영비 등 간접비를 포함해 모두 2027억7400만원 규모로 전체 정부출연금의 53.7%에 이르고 있다. 이는 특히 전체 출연연 예산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출연연 기관고유사업비의 20% 이상이 창의적이고 특성화를 위한 출연연의 장기연구테마와는 동떨어진 연구과제에 나눠먹기식으로 배정되고 있다. 각 출연연의 기관고유사업 현황자료를 보면 과거 2∼3년간 연구과제 수주가 전혀 없는 책임급 연구원들의 연구비로 투입되거나 연구수행능력이 의문시되는 연구원들의 연구비로 투입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게 연구원들의 지적이다. 출연연의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할 기관고유사업비가 나눠주기식 연구비 투입으로 출연연의 경영혁신과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기관고유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연구원들은 전체 출연연 예산확보 차원에서 기관고유사업 외에 별도 수탁연구과제 2∼3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데도 대부분의 출연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특정 연구원에게 기관고유사업 1개 과제만 맡기고 연구비도 많게는 2억∼3억원씩 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출연연측은 『기초기반기술의 경우 전공에 따라 국가연구과제가 2∼3년씩 공백이 있어 기관고유사업으로 연구를 진행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나눠먹기식이라는 지적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초기반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원들이라 하더라도 타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데도 타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않는 연구원이 허다하고, 특히 연구과제도 주력 기관고유사업과는 동떨어진 연구과제가 대부분이라는 게 연구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그런데도 기관고유사업비를 출연하는 정부 관련부처는 『연구과제 선정 등은 기관장 책임아래 알아서 할 일』이라며 이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하고 있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출연연마다 기관고유사업 심의·평가위원회가 있으나 형식에 그치는 등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며 『연구능력이 떨어지는 연구원의 자질에도 문제가 있지만 정부 연구개발사업의 발주가 끊기는 경우 새로운 연구과제를 수주할 때까지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라고 밝혔다.

 출연연에 따르면 전체 연구원 중 기관고유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원의 참여율은 최저 48.0%에서 최고 65%에 이르고 있다.

 이에 따라 출연연의 젊은 연구원들은 『연구능력이 떨어지는 연구원들에 대해 인건비 보상 차원에서 나눠먹기식으로 연구비를 배정하기보다는 공정한 평가를 거쳐 출연연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연구과제를 선정해 집중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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