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테크놀로지는 서로를 호흡한다. 예술은 기술의 힘을 빌려 대중을 매료시키고, 기술은 예술의 상상력으로 미래를 본다. 예술과 기술, 그 긴밀한 교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곳에서 우리는 영화를 만난다.알고 보면 영화는 태생부터 테크놀로지의 유토피아였다.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나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 같은 기술적 진보가 영화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 1895년 12월 28일 파리 변두리의 지하 카페에서 최초의 영화가 상영됐을 때 관객들은 벽을 뚫고 달려드는 기차에 혼비백산했다.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첨단기술이 펼쳐졌던 것이다.
이제 영화의 메카 할리우드는 SF와 특수효과의 전쟁터다. 디지털 기술이 투입되지 않는다면 블록버스터도 없다. 영화 역사상 최고 흥행수익을 올린 작품은 「타이타닉」. 지난해 미국에서만 6억 달러, 세계시장에서 18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2위는 스필버그의 공룡이야기 「주라기공원(93년)」, 이어서 「인디펜던스 데이(96)」 「스타워즈(77)」 「라이언 킹(94)」이 톱 5를 차지했다. 모두 첨단기술로 현란하게 치장한 작품들이다.
올 여름 극장가도 특수효과 대작들이 점령하고 있다. 기술만 남고 감동이 사라졌다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스타워즈 에피소드I」은 푸짐한 볼거리로 채워진 특수효과의 성찬(盛饌)이다. 동양 검술을 연상시키는 광선검, 중세 스타일의 왕궁과 수중 도시, 벤허의 전차경주를 패러디한 자동차 레이스, 로봇 전사들의 전투신 등은 달러와 첨단기술, 엔지니어들의 장인정신이 빚어낸 최고급 요리로 손색이 없다. 블루스크린 앞에서 배우가 연기를 하고 나중에 컴퓨터 그래픽을 입히는 크로마키 기법으로 만들어진 반인반수의 캐릭터 자자빙크스는 자연스러운 몸짓과 표정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애니메이션 왕국 월트디즈니가 선보인 「타잔」은 올 여름 또다른 즐거움이다. 나무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타잔의 움직임은 마치 롤러코스트를 신은 듯 힘차고 날렵하다. 타잔의 움직임이 디즈니 특유의 화려하고 동화적인 색감, 다이내믹한 비트의 아프리카 리듬과 어울려 360도 회전할 때는 관객들이 눈으로 따라잡기 힘들 정도. 이처럼 역동적인 화면은 디프 캔버스(Deep Canvas)라는 새로운 CG 기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디프 캔버스는 돌과 나무, 포도덩굴이 뒤섞인 울창한 밀림을 3차원의 공간으로 만들어 자유자재로 회전시킬 수 있는 디즈니만의 독창적인 방법이다.
「오스틴 파워」는 올 여름 「스타워즈」의 신화를 깨뜨린 SF코미디다.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스타워즈」를 3주 만에 끌어내렸기 때문. 「오스틴 파워」는 호시탐탐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인류의 적 닥터 이블을 물리치기 위해 활약하는 영국첩보원의 이야기다. 냉동로켓을 타고 우주로 사라진 닥터 이블을 잡기 위해 냉동인간이 되어 30년을 기다린다는 황당한 줄거리. 미국적인 음담패설이 우리 관객들에겐 너무 낯설어 흥행을 점치기 힘들지만 스탠 윈스턴의 현란한 SF는 나무랄 데가 없다.
3000년 전 이집트의 저주를 오싹한 호러물이라기보다 신나는 어드벤처로 포장한 영화 「미이라」. 한 여름 더위를 날려줄 탐험가들의 모험이야기 뒤에도 첨단기술이 숨어 있다. 유람선 갑판에 불이 붙고 요새의 안뜰이 불꽃회오리에 휩싸이는 장면, 사막 속에 비행기가 빨려들어가고 모래 더미 속에서 미이라의 얼굴이 서서히 드러나는 장면은 컴퓨터그래픽과 특수효과의 합작품이다.
개봉 이틀 만에 25만명을 돌파하면서 초반흥행에 호조를 보인 국산영화 「용가리」는 한국 SF영화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작품. 엉성한 구성과 외국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가 아쉽긴 하지만, 미니어처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용가리가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은 우리영화의 기술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아냈다. 현재 촬영중인 「자귀모」도 크로마키, 몰핑 등 다양한 컴퓨터그래픽에 20분을 할애할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은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특수효과의 달인들은 누구일까. 지금 할리우드에는 이름이 곧 흥행의 보증수표가 되는 디지털 특수효과 군단들이 있다. 특히 조지 루카스가 이끄는 ILM(Industrial Light & Magic), 제임스 카메론의 디지털 도메인, 스티브잡스의 픽사가 그 전위부대들이다.
이 중 가장 뼈대있는 디지털가문은 ILM이다. 77년 「스타워즈」로 데뷔한 후 조지 루카스 사단은 특수효과의 전설이 됐다. 여배우의 얼굴표정에 따라 3차원으로 변하는 뱀모양의 거대한 물기둥(어비스)으로 영화 역사상 최초의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을 선보였고, 사이보그 로봇이 불길 속에서 끈적한 액체상태로 몸을 일으킨 후 순식간에 조립되어 원래의 형상을 되찾는 장면(터미네이터2)에서는 몰핑기법을 선보였다. 집채를 삼키고 트럭을 날려버리는 거대한 소용돌이 「트위스터」, 해저터널이 붕괴되는 재난영화의 걸작 「데이 라잇」, 고속전철 TGV에 매달린 톰 크루즈의 초특급 액션 「미션 임파서블」이 모두 ILM의 작품이다. 이제 ILM은 특수영화의 계보에 「스타워즈 에피소드I」을 추가하게 됐다. 「미이라」 역시 ILM 소속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터 존 버튼의 작품이다.
ILM의 아성에 도전하는 특수효과의 명가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이끄는 디지털 도메인(Digital Domain)이다. 이 회사는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퍼붓는 총알 사이를 춤추듯 비껴 가는 「트루라이즈」로 화려한 신고식을 한 후 「단테스 피크」에서 살아 움직이는 화산의 폭발장면을 보여줬고 바다 밑에 가라앉은 거대한 함선 타이타닉호로 전세계 극장가를 점령했다.
픽사(Pixar) 스튜디오는 할리우드에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낸 업체. 영화 역사 100주년의 기념비적인 해였던 95년 이 회사는 100% 컴퓨터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헌정했다. 픽사의 설립자이자 CEO인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천재일 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역사를 쓴 인물로 기록되게 됐다. 캐릭터 각 부분에 원하는 대로 움직임을 부여하는 3D컴퓨터 모델링툴인 「Menv」와 복잡한 3차원 표면을 색칠하기 쉽도록 평면으로 만들어주는 「Unwarp」 렌더링 소프트웨어 렌더맨(RenderMan) 등은 픽사의 트레이드 마크다.
「개미」와 「이집트 왕자」를 내놓은 드림웍스도 특수효과의 신흥명문으로 떠오르고 있다. 「개미」에서 발라공주와 길을 떠난 z-4195가 뉴욕 하이드파크 쓰레기장에서 구경하게 되는 먹다 버린 샌드위치와 콜라캔, 물방울 속에 갇혀 고생하는 개미의 모습이 압권. 드림웍스 제작진은 개미의 표정을 잡기 위해 300개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입력시켜 놓고 작업했다는 후문이다. 이들은 땅밑에 사는 난쟁이의 모험을 그린 새로운 애니메이션 「슈렉(Shrek)」에서 다시 한 번 3차원 애니메이션의 진수를 보여줄 계획이다.
테크놀로지가 미래의 영화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디지털배우들이 등장해 인기를 누리고 미래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컴퓨터에 앉아 스크립트 작성부터 의상과 분장, 촬영, 편집까지 끝마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또 관객들이 지구 반대편 어느 스튜디오의 웹사이트에 접속한 뒤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 거실의 디지털 텔레비전으로 보는 일도 가능할 수 있다. 21세기의 영화를 미리 볼 수는 없지만 기술과 예술이 변함없이 영화산업을 이끌어가는 쌍두마차가 되어 관객들을 꿈과 환상의 세계로 실어나를 것임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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