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사들이 지상파 방송의 조기 디지털화 방안에 반대했던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재원조달 문제였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오는 2010년까지 디지털 전환비용으로 2조3000억원 가량의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2조3000억원이란 자금은 표준화질(SD)TV 방송을 염두에 두고 추산된 것인데 만일 고선명(HD)TV 방송으로 전환할 경우에는 SDTV에 비해 연주소 시설에는 2.5배, 송중계 및 링크 장비에는 1.2배의 자금을 추가 투입해야만 한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기간 동안 방송사의 재정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없는데다 그나마도 공적기여금·방송발전기금 등의 명목으로 수입이 빠져나가면 실제 디지털 방송에 투입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은 별로 없다는 게 방송사측의 하소연이다.
방송사들은 이같은 재정 형편을 감안, 방송발전기금 및 정보화촉진기금 지원, 관세 및 세제 감면, 재정 특별융자, 수신료 인상, 중간광고 허용 등 지원책을 정부가 앞장서서 강구해줄 것을 요구해 왔다.
지상파 방송사업자들은 외국도 디지털 방송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지원책을 마련중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경우 디지털 방송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해 주파수 경매제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기존 방송사업자에 디지털 주파수를 무료로 할당했다. 영국 정부는 BBC의 송출 기능을 민간에 매각해 2억4000만파운드의 재정을 확보했다. 프랑스 정부는 10억프랑 정도를 디지털 방송재정으로 지원키로 했고 민영방송과 공영방송의 합작을 통해 고비용 문제를 해결했다.
지상파 디지털 시험방송의 실시 시기를 2000년에서 18개월 가량 연기한 일본도 민간 투자액의 일정 부분을 국가가 부담한다는 방침 아래 디지털 관련투자에 저리융자 및 세제상 우대 조치를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외국의 사례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 역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기존 지상파 방송사들의 논리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 주장의 밑바탕에는 방송 분야도 다른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공정한 시장경쟁원칙이 도입돼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이들 시장중시론자는 기존의 지상파 방송사들에 디지털 방송용 주파수를 별도의 경매 절차없이 허가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특혜라고 주장한다. 기존 방송사업자들이 미래의 방송시장과 성장 가능성을 예측해 디지털 방송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무리하게 정책적인 지원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방송광고시장은 현재의 1조5800억원 수준에서 오는 2010년에는 8조8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자료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디지털 방송에 들어가는 비용의 4배에 가까운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따라서 굳이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기존 방송사업자의 디지털 전환비용을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최근 일본의 민방연맹과 상반된 보고서를 내놓은 메릴린치사 역시 이같은 시각에서 일본의 지상파 디지털 방송이 2005∼2006년께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고 예측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데이터 방송이나 특정 채널을 중심으로 유료서비스가 활성화될 경우 방송광고시장과 별도로 부가서비스시장도 크게 활성화될 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한다.
지상파 방송·케이블·위성방송간 형평성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만일 지상파에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면 똑같은 논리로 케이블TV나 위성방송의 디지털화 계획에도 정부의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들이 앞으로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게 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디지털 방송시대에는 종전과는 다른 정책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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