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재미있고 신기한 과학이야기 (63);암호의 과학

 2차대전 당시, 암호해독 전문가인 미국 해군 정보장교들이 단 하나의 암호 메시지를 붙잡고 3주일이나 씨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그 암호를 풀지 못했는데, 나중에 암호를 만든 사람들이 나타나서 너무나도 간단하게 메시지들을 암호화하고 또 그것을 즉각 해독해내자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군사용으로 쓰이는 암호는 기계까지 동원해가며 복잡한 절차와 시간을 들여 해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정보장교들은 새로운 암호 체계가 너무 간단해서 신뢰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고, 그래서 처음 한동안은 채택되지 못했다. 미군이 기존에 쓰고 있던 암호 제작용 블랙박스는 톱니바퀴와 회전자 등이 복잡하게 뒤얽혀 알파벳 순서를 뒤섞어버리는 장치였고 그것으로 만들어진 암호를 해독하려면 복잡한 난수표나 암호 첩이 있어야 했다. 게다가 난수표가 있어도 사전에 약속된 규칙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을 놀라게 한 새로운 암호 체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다름 아닌 미국 인디언 나바호족의 말이었다. 그들은 기존의 나바호 언어에다 새로 만든 400개 정도의 암호 단어들을 섞어 일상용어처럼 쓸 수 있는 새로운 암호어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나바호어는 중국어처럼 음조의 높낮이에 따라 의미가 변하며, 또한 동사 하나가 주어·목적어·부사 등을 동시에 포함하여 사실상 한 문장으로 번역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2차대전 중에 독일군들은 「에니그마」라는 암호 기계를 사용했다. 톱니바퀴들이 복잡하게 연결된 에니그마는 특정 문자를 같은 의미로 두번 이상 사용하지 않도록 교묘하게 조합되어 있었고, 더구나 조합 규칙도 매일 바뀌었다. 연합군 측은 이 암호 때문에 무척 애를 먹었지만, 마침내 1940년 영국의 수학자들과 언어학자들이 에니그마 시스템을 푸는 데 성공했다.

 미군은 1942년경부터 본토에서 직접 차출한 나바호족 출신 병사들을 전선에 배치하여 암호 통신병으로 실전에 투입했다. 당시 일본군들 중에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있어서 미군 통신을 도청했으며 기존의 암호 통신을 해독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바호어는 일본인은 물론이고 미국 사람들에게조차 전혀 생소한 언어였다. 게다가 새로 만든 암호 단어를 섞어 사용했기 때문에 훈련을 받지 않으면 나바호족 사람이라 할지라도 해독할 수가 없었다.

 나바호족 암호병들은 2차대전 때 420명이 활약했다고 전해지는데 그들은 암호를 글로 쓰지 않고 오로지 말로만 통신을 했기 때문에 보안성은 그만큼 더 철저했다. 단지 곤란한 문제라면 나바호족 사람들이 동양인 외모를 지니고 있어서 이따금 같은 편에게 일본군으로 오해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사실 북미의 인디언들이 모두 그렇듯이 나바호족도 미국 백인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나바호족은 1864년에 킷 카슨이라는 백인이 벌인 초토화 작전으로 말미암아 종족 전체가 미국 정부에 굴복해버린 쓰라린 과거가 있었고, 2차대전 당시만 해도 투표권도 없는 열등 국민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나바호족 젊은이들은 일본과의 전쟁이 터지자 미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상 대대로 이어 내려온 자신들의 땅을 지키고자 참전했다고 한다.

 오늘날 미국에서 수학자들이 가장 많이 일하는 직장은 정보기관과 투자금융 회사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도 천재적인 수학자인 주인공이 정보기관에서 강력한 취업 권유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 「콘택트」에서 외계인의 메시지를 풀 때에도 수학적 기본 지식이 동원된다. 즉, 수학은 우주의 공용어인 셈이다. 세상과 우주의 밝혀지지 않은 신비들은 달리 말하자면 아직 해독하지 못한 암호들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비밀을 밝혀낼 「우주의 나바호어」같은 원리가 어딘가 우리들의 눈을 피해서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박상준·과학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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