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케이블망 개방논쟁 "가열"

 지금 미국은 통신업계, 연방정부, 지방자치단체 할 것 없이 케이블TV망 개방 여부를 둘러싼 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 케이블TV망을 경쟁업체에 개방해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들이 이를 기반으로 자유롭게 인터넷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측과 케이블TV사업자가 망을 개방하지 않고 서비스 독점권을 가져야 한다는 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아메리카 온라인(AOL)을 비롯한 ISP들은 전화망과 마찬가지로 AT&T 등이 보유하고 있는 케이블망을 통해서도 인터넷 접속서비스에 나설 수 있게 허용해 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AT&T와 타임워너 등 케이블TV사업자들은 자사 고객들이 케이블망을 이용한 고속 인터넷서비스를 원할 경우 자사와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ISP, 즉 익사이트앳홈(Excite@Home)이나 로드러너에 가입해야 한다는 조건을 고수해 왔다.

 케이블망 개방을 주장하는 측은 케이블기반 인터넷서비스 가입자들도 다양한 ISP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하나의 케이블망에서 단일한 ISP가 독점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여러 업체가 공존하는 경쟁체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AT&T 등 케이블TV사업자들은 망을 개방해 여러 ISP가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케이블망의 특성상 데이터 전송속도가 현저히 떨어질 염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서비스 장애가 일어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상호 간섭현상 없이 무수한 ISP가 공존할 수 있는 전화망과 케이블망은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서비스 품질저하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뿐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기술적 문제 외에 금전적인 문제도 양측의 논쟁에 초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TCI, 미디어원 등 굵직굵직한 업체를 인수하면서 미국 최대 케이블TV사업자로 떠오른 AT&T의 경우 케이블망을 AOL과 같은 ISP들과 공유해야 한다면 12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망 인수작업을 벌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케이블망에서 양방향 데이터통신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투자해온 마당에 이를 고스란히 경쟁 ISP들에게 내준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ISP들도 물러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AOL의 경우 1700만명의 가입자 대부분이 전화선 기반 인터넷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나 전화선 기반 인터넷은 케이블 등 광대역망 기반 고속 인터넷서비스에 점점 더 많은 자리를 내줘야 하는 형편으로 내몰리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지역전화사업자들이 전화선에 기반한 고속통신기술인 디지털가입자회선(DSL) 서비스 제공에 지지부진한 반면 케이블망은 빠른 전송속도에 힘입어 광대역통신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케이블망이 개방되지 않을 경우 전화선 기반 ISP들은 이미 사그러져 가는 시장에서 발을 붙이고 있는 상황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ISP들은 AOL을 비롯한 70개 ISP가 참여한 단체 「오픈넷」을 결성하고 AT&T가 케이블망을 무조건 개방해야 한다는 로비를 계속해 왔다. AOL은 두 차례에 걸쳐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케이블업체들의 망개방을 촉구하는 압력을 넣었으나 별 뚜렷한 소득은 얻지 못했다.

 양측의 논쟁은 이달 중순 지역전화사업자 GTE와 AOL이 협력해 케이블망이 여러 ISP에 개방돼도 기술적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실험을 벌이면서 좀더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GTE와 AOL 양사는 케이블망을 개방해도 기술적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플로리다주 클리어워터지역 케이블망에서 3개 ISP가 인터넷서비스를 실시하도록 한 결과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곧 양측의 기술논쟁으로 확대됐다.

 다음날 AT&T 산하 ISP인 익사이트앳홈은 GTE·AOL의 발표에 대한 공격을 퍼부었다. 익사이트앳홈 관계자는 양사의 실험이 기술적인 문제를 간과한 채 실시됐다고 지적하고 실험결과 발표에 대해서도 기술적 전문가가 아니라 변호사와 정책담당 임원과 같은 비전문가가 했다는 이유로 의구심을 표명했다.

 또한 GTE·AOL의 테스트는 사용자가 50∼75명밖에 안되는 좁은 범위에서 실시돼 별 문제가 없었더라도 대규모 망에서는 고객지원이나 네트워크 트래픽 흐름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익사이트앳홈 관계자는 또 케이블망에서 여러 ISP가 공존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케이블모뎀 표준을 일부 수정해야 하고 소프트웨어도 변경해야 하는데 여기에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GTE는 케이블망 용량에 무리가 갈 경우 고객들의 접속을 제한하는 방법을 쓸 수 있으며 나머지는 기술적 장애가 아니라 관리 및 비용과 관련한 문제가 대부분으로, 이는 업체간 협상을 통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고 밝혔다.

 양측의 치열한 망개방 공방은 정치권으로도 이어졌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케이블망 개방과 관련한 정책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최근 연방법원에서 오리건주 포틀랜드 당국이 케이블망 사업자에 대해 다른 ISP들에 망개방을 강요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 FCC 윌리엄 커너드 의장은 지역마다 다른 정책을 만들 경우 시장에 큰 혼란이 야기될 것을 우려하면서 케이블망 개방을 법제화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마이애미­데이드카운티, 플로리다 등은 이 문제와 관련해 정책을 조정중에 있으며 로스앤젤레스는 당분간 케이블망을 개방하지 않기로 하는 등 지방자치단체마다 독자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한편 하원에서 케이블TV사업자들의 독점적인 사업권을 보장하는 법안이 곧 상정될 전망이어서 이 법안의 통과여부에 따라 ISP들과 케이블TV사업자들의 지루한 망개방 논쟁이 마무리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은 현재 세부내용에 대한 마무리 작업이 진행중이며 이주중 상정될 예정이다.

<안경애기자 ka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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