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업체가 상공부에 제출한 교육용 컴퓨터 개발 계획서의 내용은 하드웨어의 구성, 소프트웨어의 내용, 응용프로그램의 계획, 주변기기로 크게 네 분야였다. 대부분 당시 개발하고 있던 상업용 시제품 규격을 열거한 것에 불과했는데, 접수한 13개 회사 가운데 금성사, 한국상역, 삼보컴퓨터, 동양나일론, 삼성전자가 낙찰이 되었다. 다섯개 회사를 선정한 것은 업체당 1000대씩 생산한다는 것이었다. KIET에서 제시한 기본 규격은 8비트 데이터 처리성능, CPU는 1㎒ 및 16kB 이상, 소프트웨어 롬바이오스와 언어 번역기를 기본 탑재하고 롬은 8kB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렇게 최소 규격을 제시한 낙후성이었다. 그것은 정부에서 나온 예산의 한계 때문이었다. 대당 납품 가격을 24만원으로 정해 놓았는데, 이것은 과학기술처 예산 10억원에서 추가된 2억원을 합한 12억원을 5천대로 나눈 수치였다. 컴퓨터 시세를 고려하지 않고 예산과 숫자를 맞춰서 제품을 생산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24만원에 컴퓨터를 제작해낼 수 있는 업체는 없었다. 그래서 각 업체에서는 과학기술처 납품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제작을 하되, 민간 업계의 수요를 기대하고 마이너스 단가 제작을 한 것이다. 그것도 한대당 60만원이 드는 것을 24만원에 납품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되니 건축에 부실 공사가 발생하듯이 컴퓨터 제작이 완벽할 리가 없었고, 그 성능도 좋지 않았다. 그때 개발되어 전국 90개 상업고등학교와 10개 직업훈련원, 17개 각급 공무원 교육에 배분된 컴퓨터는 「금성패미콤」 「하이콤8」 「스폿라이트1」 「트라이젬30」, 「SPC1000」이었다.
그런데 보급된 이들 컴퓨터는 사용이 불가능했고, 프린터나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 등의 보조기억장치가 추가되어야 하는데 그 비용이 150만원이었다. 그러니 각 학교에서 추가 부담을 해야 하는 점 때문에 교육용 컴퓨터를 받고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형식적이고 요식적인 정책에 이 내용을 알고 있는 많은 기술자들의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개새끼들, 그런 돈이 있으면 벤처창업이나 도와주지.』
노 과장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나는 술이 취한 상태에서 그들과 헤어져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하숙집 방안에는 청계천 세운상가의 부품 가게를 들락거리면서 조립한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컴퓨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원했다.
『지금부터 네가 나를 살려주어야 한다. 오, 사랑하는 나의 베아트리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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