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선수를 이단 발차기로 눕힌 박찬호 선수에게 형법상의 폭행죄를 적용하지 않는 것은 야구경기라는 특수성과 자율적인 게임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사회의 규제도 자율조치로 충분하다.」
「그러나 선수간 집단 폭행이나 관중 폭력이 가세된다면 형법 적용은 불가피해진다. 사이버사회 역시 기존 법의 적용은 당연하다.」
사이버사회의 공간이 확대되면서 이를 규율하기 위한 이른바 사이버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위의 예는 사이버사회 법 제정과 관련한 논의의 한 단면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사례다.
사이버사회의 활동은 특정공간(운동장)에서 독립적으로 치러지는 야구나 경마에 비유될 수 있다. 가령 네티즌들의 활동 가운데 음란물 유포, 익명의 언어폭력, 스팸메일 등의 예를 보자. 이때 법제 논쟁은 야구 규칙처럼 자율 조치로 충분하다는 주장과 기존 법에 사이버 폭력처벌 조항을 삽입하자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게 된다.
자율조치로는 음란물과 스팸메일을 차단해주는 소프트웨어 등 기술적인 처리방법과 사이버 폭력 행사자를 집단 소외시키는 방법 등이 동원될 수 있다. 야구선수에 일정기간 경기 출장정지를 가하는 것과 같다. 이 주장은 사이버사회 구성원인 네티즌들의 성원을 받고 있다.
반면 전자거래(일렉트로닉 비즈니스)와 같은 더욱 적극적인 사이버 활동의 경우 법제의 필요성은 크게 높아진다. 기수의 묘기보다는 관람객들의 참여(베팅)가 더 중시되는 경마의 경우 뒷거래나 승부조작이 횡행한다면 그것은 경마장 안은 물론이고 사회전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때는 경마장내 자율규제는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기 때문에 형법 등 일반법 적용이 불가피해진다.
하지만 이같은 불법과 탈법이 사이버사회에서 발생했을 경우 일반법 적용은 문제가 된다. 사이버사회는 기본적으로 모든 생산과 유통이 0과 1이라는 비트단위로 이뤄지는 디지털 사회이며 물리적·시간적 제한도 없다. 물리적 공간에서 시차를 두고 유지되고 있는 현실사회 기반의 일반법을 사이버사회에 적용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다. 새로운 법체계로 사이버사회를 정의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대목이다.
구체적으로 전자상거래(일렉트로닉 커머스)와 저작권 분야를 예로 들어보자. 경제행위로서 전자상거래는 그 효율성과 투명성에서 기존 방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혁명적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거래 효력이나 과세, 소비자보호 등에 기존 법체계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계적으로 전자상거래 교역량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각국이 관련법 제정이나 개폐를 서두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음달 1일 전자거래기본법과 전자서명법이 발효되는 우리나라 역시 전자상거래 기반조성을 위한 전초는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저작권법 또한 시급한 보완이 요구되는 분야. 사이버 사회는 기본적으로 무제한적인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사회다. 기존의 저작권은 복제가 창작만큼이나 어려웠던 아날로그 정보사회, 즉 산업사회의 산물이다. 기존 사고의 틀 속에서 만들어진 저작권법이 사이버사회 저작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세계 지적재산권기구(WIPO)가 지난 96년 12월 기존 저작권법을 보완한다는 취지에서 디지털 전송과 관련한 저작권자의 새로운 권리형태로 「공중전달권」을 규정한 것은 좋은 예다. 국내에서는 문화관광부가 전송권(공중전달권) 조항 신설을 골자로 하는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중이다.
그러나 저작권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저작권 남용이다. 사이버 공간이 엄청난 복제능력을 갖고 있는 것 만큼이나 저작권의 무제한적 남용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사이버 공간이 자칫 왜곡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작권 보호와 함께 권리 남용을 막을 수 있는 대책 마련은 이제 범세계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
한편 현실과 사이버사회가 병존하는 상황에서 사이버 법제가 또다른 모순을 잉태하는 것은 아닌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전자거래기본법과 전자서명법의 경우 발효되기도 전부터 여러 문제점들이 노정되고 있는 것은 좋은 예다. 소관 부처에 따라 지엽적, 산발적으로 만들어진 이 법들이 과연 경제활동 전반을 포괄하는 기본법령으로서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의문도 그 가운데 하나다.
전문가들이 『산업사회적 시각과 잣대로 새로운 지식정보사회를 정의하려는 식의 법제는 이제 더이상 필요없다』는 따끔한 충고를 하고 있는 것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돼야 할 부분이다.
사이버사회는 기본적으로 구성원인 사이버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전자민주주의 성격을 띠고 있다. 기존 산업사회의 법들을 단지 일부 수정해 그것도 규제 항목만을 추가하는 형태로 진행돼서는 안된다는 점이 최우선 고려대상으로 꼽히는 이유다.
<김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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