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백과사전

 최근 비평가들로부터 우수한 외국영화로 호평받은 바 있는 영화 「캐릭터」의 주인공 야곱은 사생아로 태어나 온갖 수모를 겪는다. 야곱에게는 이전 주인집에서 놓고간 다 떨어진 백과사전이 유일한 희망이자 낙이었다. 비록 T자까지 밖에 없던 낡은 백과사전이었지만 야곱의 어린 시절은 이 백과사전이 있어 행복했다. 성년이 된 야곱은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하지만 사기꾼에게 걸려 파산한다. 그러나 백과사전 덕택에 법률회사의 조수로 취직해 밀린 빚을 갚을 수 있게 된다. 야곱의 상사는 야곱이 전재산을 몰수당하는 가운데도 사재를 털어 백과사전만은 지니도록 해준다. 그것은 야곱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독학으로 성공해 마침내 변호사 시험에 당당하게 합격한 야곱에게 동료들은 24권으로 된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을 선물한다. 물론 A에서 Z까지 온전한 한 질의 백과사전이었다.

 어릴 적 백과사전 한 질을 선물받으면 천하를 얻은 듯 기뻤다. 통째로 외워버릴 심사로 며칠 밤을 꼬박 벌건 눈으로 지샌 적도 있었다. 결국 중도하차하고 말지만 이때의 흥분만은 평생을 지속하는 게 백과사전과의 인연이다. 뭔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의존하기도 하지만 딱히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백과사전을 뒤적이면 마음이 풍만해지곤 했다. 백과사전과의 교우는 언제나 느긋하고 풍족했다.

 최근 들어 멀티미디어 백과사전이 등장해 백과사전 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CD롬의 등장으로 백과사전 업계가 대변혁을 맞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수년 전 브리태니카의 CEO를 만나 CD롬 백과사전의 공동 발간을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 빌 게이츠는 이에 따라 독자적인 CD롬 백과사전 「엔카타」를 개발했고, 이 제품은 백과사전 업계의 판도를 뒤바꿨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브리태니카 측은 빌 게이츠에게 다시 협상을 제의했다. 그러나 빌 게이츠는 『이제 브리태니카 상표의 가치는 예전 같지 않다』는 한마디로 단호히 거절했다. 브리태니카는 이후 극심한 조직개편과 인력이동의 산고를 통해 현재는 멀티미디어 백과사전 시장에 동참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시장을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비록 백과사전의 모양새가 종이에서 비트로 전환됐지만 백과사전이 인간의 꿈과 희망을 담고 있는 점은 아무리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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