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윈텔왕국 건설을 위한 전초작업인가, 아니면 중년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몸부림인가. 컴퓨터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양대산맥인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인텔(윈텔)의 인수합병(M&A) 및 지분매입이 올 들어 숨가쁘게 추진되고 있다. 물론 인수나 자본제휴가 현재 정보기술(IT)시장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특히 최근 들어 활발해지고 있는 두 업체의 행보는 이들이 컴퓨터업계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전체 시장흐름에도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
윈텔진영이 단순히 PC시장의 지배체제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란 의지는 진작부터 곳곳에서 표출돼 왔다.
그러나 인수합병이나 투자와 관련해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자제하는 듯이 보이던 이들의 움직임은 올 들어서 공교롭게도 거의 동시에 봇물 터지듯 진행되고 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성사된 주요 계약만 해도 MS의 경우 M&A가 4건, 지분인수가 14건 정도이고 인텔은 M&A 2건, 지분투자 11건 정도에 이른다.
여기에 이달 들어서는 인텔이 지난 1일 통신시스템 업체인 다이얼로직을 현금 7억8000만달러에 인수했고 MS 또한 최근 케이블기반 양방향 TV서비스업체인 윙크 커뮤니케이션스에 3000만달러를 투자, 10%의 지분을 획득한 데 이어 경쟁업체인 인프라이즈에 대해서도 지분10%를 2500만달러에 매입, 그야말로 왕성한 식욕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투자는 대부분 통신·네트워크분야에 집중돼 역시 전체적인 무게중심이 인터넷으로 옮겨가고 있음이 감지된다.
일례로 지난달 MS는 미국 최대 통신업체인 AT&T에 지분 3.4%에 해당하는 50억달러를 투자, AT&T산하 케이블TV업체인 TCI의 세트톱박스 750만∼1000만대에 자사 윈도CE를 탑재키로 했다.
이는 미국 전체 세트톱박스 시장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MS가 미국 케이블TV시장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점에서 집중적인 관심을 끌었다.
MS의 이같은 야심은 케이블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MS는 디지털가입자회선(DSL) 분야에서도 노스포인트 커뮤니케이션스와 리듬스 넷 커넥션스에 똑같이 3000만달러를 투자, 자사 MSN 포털사이트의 폭넓은 서비스체제 구축에 나섰다.
MSN서비스 보강 계획은 이미 지난해 말 네트워크 대역폭 향상을 위해 광네트워크업체인 퀘스트 커뮤니케이션스에 대한 2억달러 투자로 본격화됐으며 이는 지난달 MSN의 무선서비스 제공을 위한 넥스텔(휴대전화 서비스업체)에의 6억달러 투자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밖에 웹MD(인터넷 의료사이트), 캐리어빌더(구직사이트), 싱월드(스트리밍 미디어 콘텐츠업체), 점프(온라인 캘린더링업체) 등에 대한 지분투자도 MSN서비스를 보강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게임업체인 액세스와 FASA의 인수합병은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의욕도 여전히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역시 막대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인텔도 MS 못지않은 전방위 인수 및 지분매입에 열기를 뿜고 있다.
이중 지난 3월 단행한 네트워크용 칩업체 레벨원 커뮤니케이션스 인수는 인텔 사상 최대규모인 22억달러로 전체적인 인수전략이 네트워킹쪽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브로드컴,프락심, 래피드 로직 등에 대한 지분투자에 이어 최근 마무리된 쉬바 인수 역시 네트워킹분야를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한 음성인식기술업체인 런아웃&호스피와 비디오콘퍼런싱업체인 픽처텔 등 멀티미디어분야의 지분매입은 고속 펜티엄Ⅲ 칩의 수요를 촉진시키기 위한 기반조성으로 보여진다.
이와 함께 인텔이 단행한 투자중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지난달 광섬유 네트워크업체 윌리엄스 커뮤니케이션스에 대한 2억달러의 지분투자로 최근 새로 진출한 데이터 서비스사업의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에 대비한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이들의 동시다발적 인수작업을 윈텔 지배체제의 위기에서 오는 돌파전략으로 풀이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리눅스의 강력한 도전이나 세트톱박스, 휴대전화, PDA 등 인터넷 접속단말기의 급부상, 그리고 법무부와 진행되고 있는 힘겨운 반독점재판 등은 굳건하게만 보였던 MS왕국에 적잖은 상처를 안겨 주었다.
인텔 또한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는 저가PC의 시장경쟁으로 많이 지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선 마이크로시스템스, 오라클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업체와 AMD 등 호환업체들의 거센 공세는 때로 윈텔진영의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A나 지분인수와 관련한 이들의 다각적인 행보는 경쟁업체들의 도전을 막으려는 수세적인 의미보다 인터넷시대의 새로운 윈텔왕국을 건설하기 위한 공격적 시도라는 분석이 현재로서 더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구현지기자 hjk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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