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인」의 대성공으로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존 카펜터 감독의 「슬레이어」는 이제는 식상했을 법한 뱀파이어에 대한 새로운 버전이다. 원제 역시 「뱀파이어들」. 영화수입사측에서 붙인 「슬레이어」란 제목은 영화가 지닌 호러적인 요소는 반감시키지만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같은 황당하고 잔인한 액션영화의 이미지엔 제법 어울린다. 굳이 장르를 구분한다면 호러와 액션을 결합한 영화가 되겠지만 「슬레이어」는 무섭다기보다는 끔찍하고, 싸구려 영화로 보기엔 나름대로 탄탄한 구성력을 갖춘 재미가 있다. 영생을 얻기 위해 교황청과 뱀파이어가 서로 결탁했다는 가설을 세운 존 스티클리의 소설이 원작. 그러나 원작의 정치적 색채 대신 존 카펜터 감독은 자신의 주특기인 공포물에 블레이드류의 잔인하고 광폭한 서부 액션을 차용했다.
뱀파이어가 된 아버지를 죽여야 했던 상처를 지닌 잭 크로(제임스 우즈)는 바티칸과 결탁, 뱀파이어들을 사냥하는 팀의 리더가 된다. 팀의 동료들과 함께 뱀파이어의 소굴에 침투하여 승리한 잭과 일행은 자축파티를 연다. 그러나 모두가 술에 만취해 정신을 잃고 있을 때 뱀파이어의 대부인 발렉이 파티장소를 습격한다. 잭이 잠시 파티장을 떠난 사이, 발렉에 의해 모두가 죽임을 당하고 발렉에게 허벅지를 물린 창녀 카트리나와 잭의 동료인 토니만이 살아남는다. 잭은 토니와 함께 카트리나를 이끌고 발렉을 찾아 나선다. 바티칸에서는 팀을 재정비하라는 지시를 내리지만 잭이 말을 듣지 않자 아담 신부에게 잭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어둠에 묻혀 있는 발렉을 뒤쫓을 수 있는 건 카트리나가 완전히 뱀파이어로 변하기 전인 48시간뿐. 이 시간 동안 발렉과 정신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카트리나의 텔레파시에 의지하며 잭 일행은 발렉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태양 아래서도 살아갈 수 있는 영생을 얻기 위해 「검은 십자가 의식」을 행하려는 발렉의 무리는 점점 수를 불려가고 토니마저 카트리나에게 피를 빨려 뱀파이어로 변해간다.
「슬레이어」가 기존의 뱀파이어 영화와 구별되는 점은 우선 뱀파이어를 규정짓는 성격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이제 더 이상 뱀파이어에게 마늘이나 십자가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며 관속에서 잠을 자지도 않는다. 창녀인 카트리나가 뱀파이어에게 목이 아닌 허벅지를 물렸다는 설정이나, 물린 후 48시간 동안 잠복기를 거치면서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장면 등은 기존의 뱀파이어 영화와 차별화되는 아이디어들이다. 감독 스스로도 밝혔듯 뱀파이어와 그에 맞서 싸우는 사냥꾼들의 대결은 관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만큼 폭력적이며, 선과 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뒤흔들 만큼 야만적이다.
<엄용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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