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전무식)은 지난달 28일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서정욱 과학기술부 장관을 초청해 「과학기술의 새 천년」을 주제로 「제21회 원탁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에는 강주상 고려대 교수, 김대만 포항공대 교수, 김영욱 아주대 대학원장, 박승덕 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이대윤 연세대 이과대학장, 강신구 문화일보 논설위원 등이 토론자로 참여해 2시간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토론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편집자>
△김영욱(아주대 대학원장)=다가오는 「새 천년」을 위해서는 우선 인력 양성을 논하기 앞서 양성해 놓은 인력이 과학기술계를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 IMF 이후 연구개발(R&D)비용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동안 육성해온 정부출연기관의 효율적인 관리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어 이를 위한 정책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박승덕(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IMF체제 이후 기업 및 국가 경쟁력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최근엔 이같은 상황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계가 앞서야 한다. 과기부 역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적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예컨대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국이 일본의 경쟁력을 따라잡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것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제조기술 및 품질관리 경쟁력이 왜 떨어지는지, 특히 반도체 부문 기술경쟁력이 왜 뒤지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결국 모든 원인은 과학기술 문제로 귀결됐다고 한다. 과학기술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결과 현재는 일본보다 경쟁력이 앞서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과학기술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범국가적인 지원이 아쉬운 때다.
△강주상(고려대 교수)=지금까지는 과기부가 출연연을 관리하는 부처처럼 인식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들어 과기부로 격상되는 등 부처 위상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이에 걸맞은 역할론 정립이 시급하다. 산자부·정통부·과기부 등 중복되는 출연연에 대한 장·단기적인 대책 마련도 요구된다. 과학기술 분야도 부득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 R&D가 그 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서정욱(과학기술부 장관)=미국에서 당시 제조업을 포함한 산업 전 분야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작업을 벌인 결과 대학의 커리큘럼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후 대학과 기업 및 정부연구기관의 커리큘럼을 바꾸고 연구실과 실험실에서는 밤새워 연구개발에 몰두했다. 금융계나 서비스업종으로 몰리던 인력도 산업계로 돌아오고 연구개발 성과도 가시적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현재는 국가 경쟁력 부문에서 일본을 앞서게 됐다. 우리나라도 이제 실용주의적인 연구개발 노력이 필요할 때다. 기초기술을 기반으로 한 응용기술 개발에 힘을 쏟아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학이 주체가 돼 연구개발에 앞장서는 한편 과학기술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이대윤(연세대 이과대학장)=과학과 기술은 불가분의 관계다. 하지만 최근에는 실용성과 경제성을 우선시하다 보니 기술발전에 치우친 감이 있다. 그러나 국가발전 측면에서 과학과 기술의 균형적인 발전이 필요하다. 특히 기초과학의 경우 당장은 실용성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해도 미래에는 실용성을 가미한 기술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다가오는 새 천년에는 문화적이고도 환경 친화적인 기술발전의 시대가 올 것이다. 이의 기반은 물론 기초과학이다. 인간을 위한 기술발전을 위해서는 기초과학 발전의 선행이 필수적이다. 과학기술부도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감안해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
△김대만(포항공대 교수)=과학기술 발전의 나침반을 어디에 맞추고 있는 지가 중요하다. 정부가 앞장서 균형적인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정책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일부 외국인들은 한국이 투자(Input)하는 것 같은데 결과물(Output)이 없다고 지적한다. 이는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일관된 방향성이 없기 때문이다.
△강신구(문화일보 논설위원)=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은 너무 자주 바뀌는 것이 문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과학기술 정책이 바뀐다. 물론 잘못된 것은 바로잡는 노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투자에 비해 결과가 신통치 않다는 사실은 이처럼 자주 바뀌는 정책에 원인이 있다. 또 IMF 등 경제위기 요인이 있을 때는 연구개발에 더 투자해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이를 줄이려 하고 있다. 제고해야 할 문제다.
△서 장관 =과기부가 지원하고 있는 연구개발비중 상당부분이 현재 대학으로 가고 있다. 또 과거와 달리 민간연구소에 대한 지원도 커지고 있다. 전체 연구개발 부문에서 정부의 역할보다 민간기업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커졌다는 얘기다. 결국 이제는 정부의 투자지원금이란 것이 「시드머니」적 성격으로 변할 수밖에 없게 됐다. 과기부는 이제 산·학·연이라는 연주자를 지휘하는 총지휘자의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과거처럼 연주와 지휘를 함께 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산·학·연은 이제 오케스트라 지휘봉을 든 과기부와 함께 조화로운 음악의 연주에 힘써야 한다.
△김 원장 =새 천년은 지식기반사회다. 생명공학과 정보산업이 그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정보통신산업이 「정보산업」의 모든 것인 양 인식하고 있다. 정보지식산업의 기반은 과학기술에서 비롯되며, 과기부가 이젠 나서야 한다. 지식기반 정보산업이 국가 경제의 초석이라고 볼 때 기초산업의 육성에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강 교수 =기술을 혁신하면 산업이 발전한다. 산업이 발전하면 삶의 질이 높아진다. 이의 기저에는 물론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자 노력이 숨어있다. 하지만 과기부는 과학자에게 산업을 위한 연구에 나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고교 3학년 학생에게 족집게 과외를 해달라는 요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좋은 성적을 위해서는 족집게 과외보다 폭넓은 공부를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 과학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 단계에 오른 지금 기초과학을 포함한 폭넓은 연구가 필요하다.
△서 장관 =기초과학에 대한 과학자 여러분의 열정을 잘 안다. 하지만 기초과학이라는 것이 사회 발전단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소득 6000달러 수준의 국가에서 3만달러 수준의 기초과학 투자를 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기초과학 분야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수준에 맞는 투자를 지속적으로 전개할 방침이다. 새 천년의 과학기술정책은 인간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는 것에 바탕을 둬야 한다.
<정리=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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