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모든 것이 너무나 빨리 변해가고 있는데 유독 제자리에서 꼼짝 않고 50년 넘게 버텨온 것이 있다.
바로 분단의 장벽이다. 머리 위로 우리 위성이 날아다니고, 인터넷을 타고 태평양도 건너며, 에베레스트도 넘어가는데 왜 남과 북을 가로막은 철조망 하나 뛰어넘지 못하는가. 새 천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통일에 대비한 정보통신 연구를 해왔다는 전문가를 찾아갔다. 통일부·정보통신부·독일대사관·국어정보학회 등을 뛰어다녔다. 전화이긴 했지만 독일의 본대학에 자료도 직접 요청했다. 가는 곳마다 물었다. 2000년이다, 서둘러야 하지 않겠느냐, 통일은 민족의 숙원 아닌가.
『북측이 절대로 열지 않으려 하는 것이 통신시스템이다. 이쪽에서 연구해 발표하는 방안이나 제안들은 사실 모두 아전인수에 희망사항일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표정들이었지만 기대는 버리지 않는다.
『현실을 무시한 채 감상에 젖어 쉽게 덤벼들어서는 안된다. 통신이 개방돼도 체제붕괴의 위험이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섣불리 온정을 베푸는 듯 생색을 내서도 안된다. 비정치적 민간교류부터 시작하자.』 감상에 젖은 당위론이나 온정주의, 현실을 무시한 우월적 경제논리가 우리들 속에 있는 더 큰 장벽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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