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BAS의 SW 불법복제율 통계 虛實

 최근 3년 동안 한국의 소프트웨어(SW) 불법복제율은 평균 70%대. 이 수치로만 따진다면 세계 10대 무역국인 한국은 중국·인도 등과 함께 후진국 대열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 국내에서는 이 수치를 근거로 한 SW불법복제 단속 때문에 정부·기업·사용자 할 것 없이 야단법석이다.

 그런데 과연 70%는 어디에 근거한 수치인가. 아쉽게도 현재까지 이 수치의 객관성은 아무도 증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단지 이 자료의 출처가 마이크로소프트·오토데스크 등 기업들이 모여 만든 미국의 민간단체인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이라는 것 외에는.

 BSA의 발표 자료가 불분명하다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한국의 BSA라 불리는 소프트웨어재산권보호위원회(SPC)의 조사결과와도 많은 차이가 있다. SPC 집계에 따르면 95년부터 97년까지 3년 동안 국내 SW 불법복제율 평균은 52.2%. 같은 기간 BSA가 공식 발표한 평균 복제율은 71.0%. 무려 20% 가까운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발견된다. 두 단체의 조사결과가 매년 큰 차이를 보이다가 97년 BSA의 발표치(67.0%)와 98년 SPC의 발표치(67.4%)가 비슷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SPC 측은 98년부터 조사방법이 이제까지의 무작위 표본 추출에서 검찰 단속자료에 근거한 표적 표본추출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검찰의 단속은 대부분 BSA회원사들의 제보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데 98년 SPC 조사는 이처럼 표적 단속한 곳만을 표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높게 나왔다는 것. 결과적으로 BSA의 조사결과는 표적 표본을 대상으로 한 SPC 조사결과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BSA 조사의 신뢰성은 특히 미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SPA)의 조사결과와도 차이가 있어 의문을 더하고 있다. 지금은 BSA의 조사결과를 두 단체가 공동 발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각각 독자적인 수치를 내놓던 94년의 경우 BSA는 75%, SPA는 82%로 역시 큰 차이가 있었다.

 안팎으로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자 BSA는 97년부터 불법복제율 조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방법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때 공개된 조사방법은 BSA조사과정에 대한 의혹만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구체적인 산출 기준과 조사방법은 물론 BSA회원사들이 제공한다는 구체적인 수치들은 전혀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본사 취재팀 역시 지난달 27일 이후 BSA 측에 직접 관련 자료의 공개를 요청했으나 회신이 없었다.

 그런데 보다 심각한 문제는 BSA 발표자료가 어떤 검증절차 없이 곧바로 미국의 대한(對韓) 지적재산권협상이나 통상압력의 근거가 되고 있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IMF와 같은 상황에서는 외국투자를 결정짓는 국가신인도의 척도로도 사용되고 있어 그 심각성은 더해지고 있다.

 실제 미국은 4월 말에서 5월 초 자국 통상법에 근거한 스페셜 301조에 따라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우선협상대상국을 지정, 발표한다. 한국은 92년부터 스페셜 301조에 따른 우선감시대상국이었으며 97년부터 감시대상국으로 한 등급 완화된 바 있다.

 BSA 등 미국의 지재권 관련 민간단체들은 오래전부터 자국 무역대표부(USTR)에 한국을 감시대상국으로 계속 묶어둬야 한다고 압력을 가해오고 있다. 지난 3월에는 BSA의 로버트 크루거 회장이 내한, 국내 불법복제에 대해 한바탕 엄포를 놓고 돌아갔고 이후 미 상무부 장관이 내한, 통상압력 시위를 벌이고 갔다. 불법복제 단속에 대한 대통령의 긴급지시가 내려진 시기도 미국장관의 방문기간이었다.

 따라서 최근의 대대적 불법복제 단속의 이면에는 스페셜 301조와 올 2월 부활한 슈퍼 301조를 앞세운 미국의 통상압력 무마용이라는 전시행정의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실제 지난 97년 국내에서 불법복제로 적발된 업체는 총 721개였다. 이 가운데 무려 79%인 568개 업체가 3월과 4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적발됐다. 그리고 그해 4월 미국은 한국을 지적재산권 우선감시대상국에서 감시대상국으로 한 등급 완화한 적이 있다.

 지난해 4월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수정, 발표했을 때 일본은 이에 반발, 국제금융정보센터(JCIF)를 통해 무디스를 비롯한 8개 민간 신용평가회사를 역평가하겠다고 나선 바 있다. 관련부처나 검찰 등 정부기관부터 미국의 민간단체 통계자료를 맹신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SW를 미래 전략산업으로 삼으면서도 정부·기업·사용자 할 것 없이 외국의 불명확한 통계자료에 내둘리고 있는 모양새는 누가 보아도 부끄러운 일이다. 불법복제는 SW산업 발전은 물론 지식정보사회로 진입하는 데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금 시점에서 정부 예산을 늘려 제도적·문화적 환경에 맞는 체계적 불법복제 조사가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김상범기자 sb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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