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혁 청인시대 사장
미군이 걸프전에서 승리하자 기자들이 사령관에게 승리의 원인을 물었을 때 사령관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번 승리는 미국 20대들의 승리다. 즉 전자전에 의한 승리다. 이것은 미국의 20대들이 피자집에서 컴퓨터를 통해 익힌 워게임의 결과다.』
농담 같지만 참으로 놀라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변화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는 경이와 변화가 너무 커서 느끼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초고속망을 이용한 멀티미디어 통신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해 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19세기 말 증기기관차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 우리 선조들이 느낀 놀라움과 충격에 비해서도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밀레니엄, 즉 새로운 기회의 시대를 맞아 정보통신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인으로서 우리의 벤처기업들이 비효율적인 중복투자와 기업간 정보교류의 폐쇄성 등으로 발전하는 데 한계에 직면해 있는 것을 보면서 종종 안타까움을 갖는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에서 기술개발의 중복투자와 폐쇄성의 문제는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정부는 부처별로, 재벌기업과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기술개발에 필요 이상의 중복투자를 거듭해 산업전반의 지속적인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일이 많았다. 굳이 다른 산업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반도체·가전·이동통신 등의 전자산업 전반에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중복투자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우리는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을 질타하고 정부의 안이한 국가프로젝트 관리실태를 확인하면서 적어도 정부나 대기업 차원의 비효율적인 중복투자만은 피하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옆집 아줌마 따라 미장원 가는 집단주의식 기술개발투자가 계속되는 분야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벤처기업군이다.
본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벤처기업이라고 부른다지만 동종분야의 기술개발 진행상황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교류만 있었어도 젊은이들의 노력이 아깝게 사장되는 일은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은 유망 아이디어를 선별해 투자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벤처기업의 기술개발상황을 외부에 공시하여 중복투자상황을 막아주는 역할, 즉 정체상황을 운전자에게 알려 교통흐름을 원활히 하는 교통방송과 같은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벤처기업에서야 예민한 기술개발상황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겠지만 국가지원자금을 받는 조건으로 최소한의 정보를 공개하는 규정을 만들어서라도 사회적·국가적 기회손실비용을 줄이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최근 들어 경기회복 분위기를 타고 정보통신분야의 창업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고 한다. 고수익상품을 찾아 금융권으로 몰려들었던 투자자금이 유망 벤처기업으로 흘러들어 국가경제를 되살리려면 특정분야에서 어떤 기업이 어느 정도의 기술개발을 하고 있는 식의 관련 투자정보는 필수적이다.
수익성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투자자금은 알아서 찾아들게 마련이다. 유망한 기술분야에서 가장 앞서있는 기업체정보가 공시된다면 굳이 벤처기업 지원정책을 정부가 앞장서 주도할 필요성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벤처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복잡한 선정지침과 투자에 따른 제반 규정 등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현재의 벤처기업군들의 기술개발흐름을 보여주는 교통지도를 만들고 신호등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발상의 전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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