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165)

 연구소 생활이 시작됐어도 나는 처음에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그 언어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지요. 이곳에서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로버트 헤밍웨이와 친구라고 하는 로이드 박사는 그 친구만큼이나 턱수염이 텁수룩했지요. 서양 사람들은 턱수염을 길러도 아주 멋있게 보였습니다. 나도 자주 면도를 하지만, 어느 때는 턱수염을 길러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그것이 자란 후에 서양 사람들처럼 멋있지 않을 경우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웃을 것 같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로이드 박사는 컴퓨터 전문가라고 합니다만, 그의 강의는 주로 통신분야에 국한돼 있었습니다. 비교적 젊은 교수로서 37세의 제퍼슨 박사가 있는데, 그는 흑인이었습니다. 흑백 갈등이 심하다고 들었지만, 지식인 사회에서는 그런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인상을 줬습니다. 제퍼슨은 이곳에서 상당히 알려진 전자공학 박사였습니다. 공부를 하는 학생 가운데는 고린도라는 청년이 있는데, 무슨 성경에 나오는 이름과 같아서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한때 컴퓨터 해커였다가 지금은 학자의 꿈을 키우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이 연구소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각국에서 모여든 컴퓨터라든지 통신 전문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이곳에서 연구하는 분야는 저마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 베일에 싸인 것처럼 비밀로 다뤄지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컴퓨터 통신체제에 접하게 됐는데, 미 육군에서 사용하던 것이 PC로 일반화된 인터넷이었던 것입니다.

 통신 제어장치는 곧 모든 공장 제어장치의 기본이 되기 때문에 나는 남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공상하는 로봇이라든지 기계 자동장치는 결국 기계 신경세포라고 볼 수 있는 회로의 제어기능에서 조절이 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베이식 언어 역시 하나의 약속이라고 봐야 합니다. 수치의 약속입니다. 그것도 컴퓨터의 한계이면서 규칙인 0과 1이 가지는 수치에서 생겨납니다. 송혜련씨는 내가 하는 말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것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컴퓨터의 원리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컴퓨터와 통신의 접목은 미래의 문명 본체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송혜련씨, 밤이 깊었습니다.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10월 25일

 시카고에서 최영준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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