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법률의 72%가 경제관련 법이고 특히 경제부처가 관장하는 법률 10건 가운데 3건이 기업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규제성 법률이라는 소식은 놀라울 뿐이다. 국민의 정부가 1년여 동안 역점을 두고 시행해온 규제개혁작업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발표한 「경제법률의 현황분석」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법률 931건 중 71.9%에 달하는 669건이 경제관련 법이고 이 가운데 27.7%에 해당하는 185건이 경제활동의 기본질서 유지보다는 규제 성격이 강한 법률로 파악됐다. 여기에 시행령과 시행규칙까지 포함할 경우 기업활동을 규제하는 법령은 2000건을 넘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직도 기업활동을 규제하는 법이 많고 복잡함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관련 법령은 경제개발시대의 정책집행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각 부처의 업무가 기능·지역·대상에 따라 나뉘어 있어 한 가지 업무에 여러 가지 법률이 공존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또 새로운 법률 제정 수요가 발생할 때마다 기존 법률을 제쳐두고 새로 법률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 점이 특징으로 분석됐다.
이는 정부조직개편을 앞두고 관련 부처들이 서로 업무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영역다툼을 벌인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더욱이 이같은 업무 주도권 다툼에서 각 부처들이 시장의 실정을 제대로 챙겨 관련 법령을 개선하기보다는 오히려 지원·육성으로 겉포장한 새로운 법령을 만들어 규제를 한다는 데 더욱 문제가 있다. 최근 인터넷 붐과 함께 급부상하고 있는 전자상거래와 관련 전자거래 기본법 및 전자서명법이 대표적인 경우다.
정부는 지난해 4월 대통령 직속으로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1년 동안 기업활동이나 국민에게 불편을 주는 규제사례를 종합적으로 점검해 5430건을 폐지하고 2411건을 개선했다고 하지만 기업들의 체감지수는 아직 낮다.
경제관련 법령 중 기업활동의 지원·육성에 관한 것보다 규제에 관한 것이 약 2배나 많고 기업에게 부담을 주는 분담금·부과금·예치금·과징금 등 준조세성 비용에 대한 법률 근거 규정이 아직도 71건에 이른다는 전경련의 지적이 대표적인 예다.
규제는 하나를 없애더라도 기업활동과 국민생활에 편익을 가져온다면 박수를 받아 마땅하지만 몇 천개를 없애고 개선하더라도 수요자인 기업이나 국민의 요구와 무관한 것이라면 크게 의미가 없다.
방문판매법 등 상거래와 관련된 법령이 하나같이 인터넷시대와 동떨어져 전자상거래를 통해 뉴비즈니스를 개척하려는 기업들이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특정제품의 규격 허가제를 신고제로 개선한 것이 기업들에는 규제개혁이 이뤄졌다고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만큼 규제개혁은 숫자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질 위주로 이루어지고 그러러면 당연히 해당자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특히 경제규제의 경우 어떤 규제를 없애고 법령을 개선하면 경제성장과 고용증대 등에 얼마만큼 효과를 낼 수 있는지 계산은 해보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세계화·정보시대에 기업들은 경영환경 변화에 발빠르게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는 각종 법률들을 현실에 맞게 정비해야 한다. 현재 어떤 법률과 규제가 얼마나 기업활동을 어렵게 하는지부터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경제법령의 개선작업이 단기간에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는 없겠지만 이번 정부조직개편과 맞물려 기능적 통합을 통해 법령의 통폐합 또는 하나씩 개선될 수 있도록 정비작업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본다.
기업활동을 규제하는 법 개정이나 규제개혁은 정부만이 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국회도 똑같이 앞장서야 한다. 아무리 규제를 없애기로 해도 그 근거가 되는 관련법령의 개정이 수반되지 않으면 시늉만의 개혁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이미 규제개혁위원회에서 폐지됐음에도 관련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어서 관련 규제개혁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음을 볼 때 입법부도 규제개혁의 주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전자·정보통신 관련법 제·개정안의 시행도 이 때문에 차질을 초래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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