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정보고속도로를 전속력으로 질주할 콘텐츠는 게임이다. 게임은 인터액티브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이며 종합예술이다. 앞으로는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가 만나는 곳에, 컴퓨터와 월드와이드웹의 접점에 게임이 자리잡게 된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고의 흥행사 스티븐 스필버그, 소프트웨어의 황제 빌 게이츠도 게임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연간 5000억원 정도. 떠오르는 황금시장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규모지만 그래도 영화시장의 두 배가 넘는다.
밀레니엄을 앞둔 게임산업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게임시장은 아케이드라고 불리는 오락실용 게임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왜곡된 구조는 특히 아케이드 시장이 일본제품의 독무대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 높다. 80년대 초반 게임을 시작한 30∼40대에게 겔러그와 제비우스는 오락실 게임의 대명사다. 요즘 10대들은 세가·남코·캡콤·시그마의 게임을 선호한다. 일본게임은 국내 오락실 수요의 무려 95% 이상을 차지한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 저가의 8비트 제품을 제외하고는 역시 80년대 후반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닌텐도·세가·소니 등의 비디오게임기 및 전용 소프트웨어 일색이다.
400억원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PC게임은 개발, 유통, 문화현상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문제로 얽혀 있다. 우선 게임개발업체들은 규모가 영세하다. 미국이나 일본의 게임이 평균 100만 달러(우리돈 13억원), 대작의 경우 1000만∼2000만 달러를 쏟아 붓는 데 비해 국산게임 제작비는 보통 1억원 내외다. 국산게임 최고의 히트작도 4억원을 넘지 않는다.
그래픽이나 프로그래밍 수준에 비해 기획과 시나리오가 열세라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우수한 게임 프로듀서의 부재는 곧 독창성 없는 게임으로 이어진다. 외산 게임의 아류작이 많을 뿐더러 기획단계부터 히트작의 시나리오를 베끼는 경우까지 있다.
게임 개발의 장르가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롤플레잉 게임 위주로 흐르면서 외국시장을 주도하는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은 완성도가 낮고 스포츠게임은 거의 불모지대다. 작품 수와 질 면에서 아직 게임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마무리작업이 불충분해 가능성 있는 게임이 외면 당하기도 한다.
유통 또한 어지러운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2년간 유통업계는 연쇄부도로 홍역을 치렀다. 용산의 대형 도매상이 부도를 내는가 하면 국내 유통의 버팀목이었던 하이콤과 에스티엔터테인먼트가 쓰러지는 등 유통시스템 붕괴의 조짐마저 보였다.
개발사-제작사-총판-도매상-소매상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유통라인과 떠넘기기식 관행 또한 쉽게 개선되기 힘든 문제다. 반품이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자금난에 몰린 유통사들이 물물교환과 덤핑판매를 반복하면서 유통질서가 더욱 혼탁 양상을 띠고 있다. 평균 3개월의 어음을 주고받는 결제관행으로 영세한 개발사나 유통사들은 연쇄부도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무자료 거래도 많아 게임산업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가전대리점과 비디오숍, 24시간 편의점 등 대안유통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게임업계는 구조조정을 거쳤다. 쌍용정보통신·현대정보기술·현대전자·삼성영상사업단·금강기획 등 대기업들이 게임사업에서 철수하거나 계열사와의 통합으로 사업을 정리했다. 이제 삼성전자·SKC·웅진미디어·(주)쌍용·LG소프트가 남게 되면서 게임 라이선싱 및 유통을 둘러싼 거품은 많이 제거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게임 전문 유통업체들이 가세하면서 게임업계 구조조정은 비교적 바람직한 방향으로 추진된 것으로 평가된다.
KRG·소프트맥스·시노조익을 비롯, 국내개발사들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절감하고 수출길 모색에 나서고 있지만 외국시장의 벽은 아직 높다. 국산게임은 세계시장에서 번들이나 염가세일이 가능한 2류작 취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게임의 본고장 미국에 정식으로 수출된 작품은 2, 3편에 불과하다. 마케팅 능력을 가진 대기업과 개발사가 파트너십을 구축해 좀더 재미있는 게임, 팔리는 게임을 만들어야 수출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때 대기업과 개발사가 한 발씩 양보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동안 대기업은 외산게임의 수입을 위한 출혈경쟁에 나선 반면 국내 개발사 육성에는 적극적이지 못했다. 중소업체의 텃밭이던 PC게임 시장에 뛰어들어 외산 타이틀 로열티만 눈덩이처럼 불려 놓았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같은 양상은 IMF 이후 국산게임 개발에 투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개선되면서 향후 수출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50억원 시장의 머드게임은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개발사가 인터넷이나 통신을 통해 직접 게이머와 만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열풍은 고사 위기에 빠진 게임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 프로기사나 프로골퍼처럼 게임대회에 출전해 거둬들인 상금만으로 풍족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프로게이머 시대도 머지 않았다. 이런 추세라면 국가대표 게임선수들이 세계대회에 참가한 모습을 생중계로 보게 될 날도 올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는 게임산업을 21세기 첨단 유망산업으로 지목, 다양한 육성책을 내놓고 있다. 게임벤처 지원센터 설립, 게임제작 기술개발 지원, 게임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에 업계가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기술담보 융자라든가 각종 세제지원 등 좀더 피부에 와닿는 지원책이 부족한 실정이다.
외국업체들의 국내 진출은 우리나라 게임산업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일본 코나미·TGL·소프트시스템, 미국의 EA와 일렉트로닉부티크(EB), 대만의 소프트월드 등이 이미 진출했거나 파트너를 모색하고 있다.
우수한 그래픽 디자이너를 보유하고도 미국과 일본의 하청시장으로 전락한 애니메이션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게임산업에 대한 정부와 학계, 업계의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보는 사람이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만큼 감정이입이 가능한 게임, 영화와 연극, 출판, PC, TV 모든 문화예술 장르의 경계를 허문 통합 미디어를 지향하는 게임으로 승부해야 한다.
<이선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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