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발생한 CIH(일명 체르노빌) 바이러스 대란은 정보사회로 가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은 일임을 새삼스럽게 입증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처럼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기생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대개 마이크로소프트(MS)사 소프트웨어라고 한다. MS사의 독주에 화가 난 해커들이 MS 제품군들을 주 공격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보사회에서의 정보독점에 대한 반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국내 모 국립대학의 전자계산소장이 불법소프트웨어 유통과 관련하여 입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어 전국 대학들은 불법소프트웨어 단속반 암행 소식에 야단법석이었다. 정부도 공개적으로 불법소프트웨어 사용대책을 세우기에 나섰고 대학을 비롯한 공공기관들도 소프트웨어 예산을 확보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작년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소프트웨어인 「아래아한글」이 불법유통 환경을 탓하며 한때 MS사에 팔릴 위기에까지 내몰리기도 했다. 여하튼 정부와 공공기관이 나서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이제 정품소프트웨어 사용시대가 열리게 되고 한발 더 가까이 정보사회로 나아갈 전망이다.
그러나 불법소프트웨어 문제는 그리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소프트웨어를 아직도 「상품」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지식」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일찍이 프란시스 베이컨이 「아는 것이 힘이다」고 하여 근대 산업사회 이후의 지식을 사회적 가치, 보편적 가치에서 개인적 가치, 경제적 가치로 개념화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지식은 팔고 사는 대상이기보다는 공유의 대상이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행위는 그 사실이야 어떻든 그것을 지식의 거래행위로 보기보다는 봉사행위로 인식한다.
21세기 경제체제가 지식기반경제이며, 지식이 자본이 되고 이윤을 남기는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된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의 체험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거리를 좁히는 일의 일환으로 정부는 신지식인운동을 벌이고 있다. 신지식인의 개념을 둘러싸고 여러 논쟁이 있지만 아마도 전통적 지식인은 지식의 상품성을 믿지 않는 데 비해 신지식인은 자신의 지식을 기반으로 많은 경제적 이익을 남긴 사람들이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상품과 경제적 재화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희소성이다. 즉 충분한 양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소비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 경쟁과 배제가 존재하며, 일정한 희생을 대가로 획득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식은 속성상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공유할 때 더 큰 지식, 더 옳은 지식이 된다. 선생님은 자신의 지식을 학생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은 지식을 학생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더 큰 지식으로 키워가는 기쁨을 맛보기 원한다.
불법소프트웨어 문제는 이렇게 서로 다른 지식의 개념차와 관련된다. 소프트웨어를 복제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마치 남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듯이 쉽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모르면 물어보고 아는 사람은 가르쳐 주고 그러면서 서로 배워가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사실상 지금은 유명한 소프트웨어들이 제값을 쳐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며 다양한 형태의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소프트웨어의 발전에 공헌을 해왔다고 반문한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런 의식에 안주할 수는 없다. 지식기반사회와 정보사회에서는 지식의 이러한 속성이 거부된다. 고려청자의 비결이나 MS 윈도체계는 모두 비싼 값으로 팔 수 있는 지적재산권이며 상품이다. 물론 그런 상품을 「훔치는 사람」은 절도범에 틀림없으며, 형사입건의 대상이 된다. 이런 지식상품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부자가 된다. 신지식인에 대한 꿈은 그런 의미에서 신흥자본가에 대한 꿈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그 최고의 견본으로 빌 게이츠가 꼽힌다. 사실 이러한 꿈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며, 빌 게이츠 이외에도 많은 신지식인·신흥자본가들이 있다. 이는 외국 얘기만이 아니며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러한 신지식인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며 이때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정보사회에 적합한 지식의 개념 정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불법소프트웨어 문제는 좀더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 지식의 개념에 비추어 보면 비록 그 개발과정에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상품과 똑같은 유형의 거래방식을 택하는 것은 소프트웨어라고 하는 지식의 발전을 위해서는 바람직한 전략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직은 고가의 소프트웨어보다는 걸음마 단계에 있는 소프트웨어들이 대종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무료로 공개되고 있다.
오늘날 PC기반 정보사회의 초석은 MS DOS와 IBM PC의 공개전략으로 기초가 다져졌으며, 인터넷의 초석을 놓은 HTML 문법 또한 전세계 네티즌들의 공동개발로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었다고 하여 값을 올려받고 법적인 강제만 능사로 삼는다면 보다 나은 지식의 창출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우리는 새로운 지식의 개념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며, 그 과정에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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