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그래픽과 동영상에 밀려 그동안 게임에서 조연 역할을 했던 「사운드」가 일약 주연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음악이나 음향을 소재로 삼은 게임은 지난 96년에 나온 세가 새턴용 「DJ워즈」, 97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용 「파라파 더 래더」 「퀘스트 포 페임」, 천재 게임프로듀서 이이노 겐지가 발표한 「에너미 제로」 정도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일본의 업소용 게임기 개발업체인 「코나미」가 내놓은 「비트마니아(Beat mania)」가 돌풍을 일으킨 이후 음악을 소재로 한 게임은 순식간에 새로운 장르로 인정될 정도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게임의 원리는 간단하다.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와 같은 역할을 하는 리듬블록이 화면 위에서 떨어질 때 건반버튼을 눌러주거나 턴테이블(스크래치 테이블)을 돌려주면 된다. 리듬블록의 음계에 맞춰 얼마나 정확하게 버튼이나 턴테이블을 조작하느냐에 따라 점수가 가감된다. 이 게임을 하다보면 자연히 음악을 연주하거나 턴테이블을 돌리는 디스크자키(DJ)의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에 「음악 시뮬레이션 게임」 또는 「DJ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까지 상품화된 음악 시뮬레이션 게임은 국내외를 합쳐 모두 20여종.
이 게임의 원조인 코나미는 「비마니(Bemani)」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무려 9개의 신작을 내놓고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건반버튼을 주로 사용하는 「비트마니아」의 후속으로 4종의 제품을 내놓았고, 「비트마니아 포켓」이라는 휴대형 제품까지 상품화했다.
힙합·레게·테크노 등 댄스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는 「댄스댄스 레볼루션」시리즈도 출시했다. 또 기타연주를 시뮬레이션한 「기타 플릭스」, 드럼연주를 응용한 「드럼마니아」 등을 잇따라 상품화, 음악 시뮬레이션 게임의 장르를 크게 확장시키고 있다. 이에 맞서 남코와 아틀라스는 공동으로 「버스트 어 무브」를, 세가는 「플래시 비츠」를, 자레코는 「VJ」란 게임을 내세워 코나미의 독주를 견제하고 나섰다.
음악 시뮬레이션 게임의 열풍은 국내에도 밀려왔다. 유니코전자(대표 윤대주)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코나미의 「비트마니아」를 국내에서 조립생산, 「비트스테이지」라는 이름으로 내수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이 제품의 국내 공급가격은 한대당 1200만원선. 가격이 비싸 주로 대형 컴퓨터게임장에 수백대 정도만이 설치됐지만 게임장 이용객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업소용 게임 전문업체 어뮤즈월드(대표 최경옥)은 국내업체로는 처음으로 「이지투디제이(EZ2DJ)」라는 음악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 최근 상품화했다. 총 10억여원의 개발비가 투입된 이 제품은 48곡의 음악이 지원되며 건반과 턴테이블 이외에 페달을 추가해 1인 3역을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혼자 하는 게임 이외에도 연인들을 위한 「커플플레이」, 두 사람이 실력을 겨루는 「배틀 플레이」, 프로급을 위한 「클럽믹스」 등 4가지 모드로 구성돼 있으며 「클럽믹스」모드를 이용한 사람은 인터넷 전용사이트(http://ez2dj.com)에 들어가 자신의 랭킹을 확인할 수도 있다.
이 회사의 이상철 개발팀장은 『올 2월 동경 AOU쇼에서 호평받은 것을 계기로 현재 일본·대만·동남아 등지로부터 수출 상담이 쇄도하고 있다』면서 『국내는 물론 원산지인 일본에서 정면승부를 걸어 보겠다』고 말한다.
음악 시뮬레이션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초보자들도 쉽게 즐길 수 있고, 강력한 스피커 음향 속에서 체감형 게임의 묘미를 맛볼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한 격투게임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게임장업주나 이용자들 모두 참신한 게임을 원하고 있는 시점에 등장했다는 것도 음악 시뮬레이션 게임의 주가를 높인 결정적인 요인으로 설명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IMF체제 이후 크게 위축된 국내 업소용 게임시장에서 1000만원대의 게임기가 앞으로 얼마나 호응을 받을지 의문이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음악 시뮬레이션 게임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것은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유형오기자 ho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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