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업체들, 가전업계 무재고경영시스템 구축에 "주름살" 패인다

 세트업체들의 무재고경영(Just In Time)시스템에 부품업체들이 멍들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대우전자 등 가전 3사가 지난 몇년동안 「숙원사업」으로 추진해온 JIT시스템 구축이 하나둘 열매를 맺음에 따라 부품업체들은 반대로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아우성이다.

 선진 경영기법인 JIT시스템의 가장 큰 목적은 재고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가전업체들만이 그 수혜자는 아니다. 부품업체는 물론 원자재업체들까지 혜택을 누리자는 게 JIT시스템의 탄생 배경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JIT시스템이 가전업체들에만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품업체들은 『가전업체들이 JIT시스템의 덕을 보는 만큼 우리들의 주름살은 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JIT시스템이 「한국형」이라는 데 있다.

 ◇국내의 JIT시스템=가전 3사는 JIT시스템 도입을 최근 마무리중이다.

 LG전자는 최근 슈퍼허브시스템을 가동, 80여 부품업체들을 JIT시스템 대상업체에 편입시켰다. 대우전자 역시 VMI기법을 도입해 3, 4개의 저항기·콘덴서업체들을 상대로 시범 운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에 앞서 수년전부터 JIT시스템에 입각한 「콕 창고」를 운영해왔다. 이들 시스템의 핵심은 부품업체들이 거대한 물류창고에 며칠분의 물량을 저장토록 한 후 이를 필요한만큼 가져다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품수급 기간을 3일 정도 단축하는 효과가 있다. 가전업체 입장에서는 손실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문제는 이 시스템이 부품업체들에 혜택을 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가전업체들이 누리는 혜택에 상응하는만큼 부품업체들의 부담이 늘어날 뿐이다. 이같은 모순은 국내 시스템이 다른 나라, 특히 JIT시스템 운영이 비교적 잘 되는 미국의 경우와 다른 데서 출발한다. 부품업체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세트업체들이 부품 납기일·시간을 정확히 지정해주는 데 반해 국내 시스템은 창고에 며칠분을 미리 놔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부품업체들은 이에 따라 어떤 품목을 언제까지 공급해야할 지 전혀 갈피를 못잡겠다고 푸념이다. 다만 가전업체들의 통고만 기다릴 뿐이다. 급하게 공급해야 하는 「지급」 물량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도 부품업체들의 불만이다. 물류창고에 부품을 쌓아놓기만 할뿐 진행사항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폐단이라는 지적이다. 한번 공급하면 제품을 빼내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힘들다. 변한 것이 없다.

 경영 측면에서 부품업체들의 부담은 더하다. 과거에는 납품 즉시 결제가 이뤄졌다. 그나마 자금운용에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JIT시스템에서는 다르다. 가전업체들이 제품을 가져다 사용해야만 대금결제가 이뤄진다.

 비용문제도 크다. 부품업체들은 물류창고의 운영비를 자신들이 전액 부담해야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JIT시스템의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대로인 재고비용에 더해 새롭게 물류창고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해결책은 없나=부품업체들은 JIT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한 획기적인 방안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스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상 문제라는 인식 때문이다. 부품업체들은 가전업체들이 JIT시스템 운용을 선진국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보를 원활히 유통시키는 것은 그 시작이다. 정보유통시스템을 마련해 부품업체들이 허겁지겁하지 않게 만드는 게 선행돼야 한다.

 JIT시스템의 성공적인 운영은 하루 이틀만에 이뤄질 문제는 아니다. 그때까지 불완전한 상태로나마 부품업체들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운영돼야 한다. 가전업체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부품업체들에 모든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공생의 길을 모색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일주기자 forextra@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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