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LG 반도체 빅딜 타결 의미

 1년 넘게 재계의 이목을 총집중시켜 온 반도체 빅딜이 마침내 최종 성사됐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산업을 상징하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10여년만에 삼성-현대-LG의 3사 체제가 막을 내리고 빅2 체제를 맞게 됐다.

 그동안 양 그룹이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와 달리 반도체 빅딜의 최종 성사과정은 대단히 싱거웠다.

 일단 양 그룹의 협상이 양수도 가격에 대한 견해차이로 장기간 표류하는 상황에서 협상의 고삐를 조이고 나선 것은 「구조조정의 해결사」로 불리는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반도체 빅딜은 현대 측의 양보가 있어야 한다』는 이 위원장의 발언을 신호탄으로 그동안 1조2000억원에서 꼼짝도 하지 않던 현대 측이 조금씩 태도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금융감독원이 현대그룹의 현대전자 주가조작 조사 발표가 이어졌고 이때부터 빅딜은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 19일 정몽헌 현대 회장과 구본무 LG 회장의 총수 회동이 이헌재 위원장의 중재로 성사되면서 1년을 끌어온 빅딜 협상은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반도체는 국내 전체 수출의 12% 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현대와 LG의 통합은 반도체 산업부문은 물론 전반적인 국내 산업 구조 개편에 메가톤급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우선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수년째 세계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쌍벽을 이루는 통합사의 등장으로 새로운 환경을 맞게 될 전망이다.

 더욱이 국내 반도체산업이 세계 메모리 반도체시장에서 갖고 있는 영향력을 감안할 경우 이번 합병추진이 국내외 반도체업계에 미칠 효과는 예상외로 엄청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최근 세계 메모리 반도체시장을 한국과 함께 좌지 우지해온 일본업체들이 지난해 이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향후 세계 D램시장 판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단 산술적인 계산만으로는 LG반도체를 합병하는 현대전자가 삼성전자를 제치고 단숨에 세계 1위의 D램업체로 올라서게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세계적인 반도체 분야 시장 조사기관인 미 IDC사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점유율은 삼성전자(20.1%)를 0.7% 포인트 앞선다.

 여기에 IDC 통계에 빠진 LG반도체의 일본 히타치사에 공급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물량까지 포함할 경우 통합사의 점유율은 2% 포인트 더 올라가게 된다.

 세계시장 측면에서는 이번 양사의 통합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부추겨 조만간 현대·LG통합사-삼성전자-미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트로이카 체제가 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번 합병으로 가져올 또 하나의 기대감은 양사가 동일 계열의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지만 기술적으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LG반도체의 경우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의 가장 유력한 기술로 부상하고 있는 다이렉트 램버스 D램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반면 현대전자는 현재의 시장 주력품인 싱크로너스 D램과 차세대 제품인 1백28MD 및 2백56MD램의 양산기술이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합병 결정으로 양사 모두 엄청난 규모의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조치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합병사는 대폭적인 비용절감을 통해 반도체시장에서 원가경쟁력이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기대다.

 D램 산업이 예전의 장치산업 성격에서 기술 주도적인 산업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아래 조단위 투자를 필요로 하는 차세대 기술투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은 이번 합병의 최대 성과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이같은 긍정적 기대감은 기본적으로 양사 통합의 시너지효과가 극대화됐을 경우를 가정한 시나리오에 바탕을 둔 것이다. 역으로 통합과정이 순조롭지 못할 경우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한 빅딜이 될 수도 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이와 함께 빅딜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빅딜 자체가 가져올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나 평가가 전혀 전제되지 않고 단순한 정치논리로 강제됐다는 것이 향후 통합사의 경영실적에 따라 두고두고 정치권의 부담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더욱이 3년여만에 다가온 D램 호황시기에 소모적인 빅딜 협상을 밀어붙임으로써 국가 경제 전반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는 비난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승철기자 sccho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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