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전시장의 일대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대일(對日) 무역수지 개선대책의 일환으로 시행되어온 수입선 다변화 조치가 오는 7월 전면 해제되는 것을 계기로 국내 가전시장이 명실공히 완전경쟁체제로 개방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캠코더, 25인치 이상 대형 컬러TV, 전기밥솥 등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제품의 국내시장 침투가 가속화할 전망이며 국내 가전업계도 이에 대비, 다양한 고급제품의 개발과 함께 유통망 정비에 나서는 등 다각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가전업계는 특히 제품별 특화전략을 수립, 국산제품이 일본산에 비해 가격대 성능비가 우수하고 더욱 철저한 AS가 가능하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키는 등 국내시장에서의 한판 승부에 사력을 집중할 태세다.
그러나 연간 6조원에 이르는 한국시장에 대한 일본 업체들의 침투전략도 만만치 않다.
특히 오는 10월 한국전자전 참가를 계기로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설 경우 품목별로 상당한 시장잠식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들도 이미 AS망 강화 등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책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현재로선 사상초유의 일대접전이 예고된다.
더욱이 일부 품목의 경우 밀수 등 음성적인 경로로 이미 국내시장을 상당부분 장악해 놓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같은 우려는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일본산 캠코더의 경우 가격 및 기술력 등의 경쟁력에서 국산을 앞서고 있는데다 핵심부품의 대일 의존도도 높아 국내시장 점유율이 40%선으로까지 확대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관련업계의 전망이다.
이같은 상황은 수입선 다변화 조치 해제로 일본산 제품의 국내 공급구조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 지금까지 부품공급, 기술이전, 제3국 생산 등을 통한 우회적인 생산이나 간접적인 유통경로를 거쳤던 제품 공급망을 일본 업체들이 직접 장악해 대대적인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가전의 경우 국내 유통망 확보가 관건이기 때문에 일본 업체들은 국내 업체와의 판매제휴나 일본식 가전 양판점을 통한 진출을 모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보다 앞서 가전시장을 개방했던 대만의 경우도 현지 제조업체들이 대부분 일본 제품의 유통업체로 전락하거나 사업을 포기한 바 있어 국산 제품이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획기적인 전략과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일본 가전업체들과의 한판 승부를 승리로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다.
제품으로 승부할 수 없다 해서 그렇다고 애국심에 호소할 수도 없는 처지다. IMF 이후 글로벌화를 내세우고 있는 우리가 자가당착에 빠져 국가 대세를 그르치게 할 수는 없다.
우선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시장개방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본 기업들의 덤핑 공세를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규제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실제 산자부에서도 수입선 다변화 품목 해제에 따른 국내 산업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일부 품목의 경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사업자별 수입 동향을 수시 점검하고, 국내 산업 피해 발생시 반덤핑 관세 등 산업 피해 구제제도를 활용해 적극 대처할 방침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내 제조업체들이 기술 및 품질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갖춘 신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장개방에 따라 일본 기업들이 기술 이전 및 부품 공급을 기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부품 공용화 및 표준화를 이뤄야 하며 하청 부품업체를 육성하고 공동기술 개발체제를 구축하는 등 업계의 공동협력체제를 하루 빨리 갖춰야 한다. 또 국내 시장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동유럽이나 구공산권 국가 등 신규 수요가 많은 지역으로 시야를 확대하고 기술 제휴 및 부품 거래처를 미국과 유럽의 다른 기업으로 다변화해야 한다.
경쟁에서 살아난 기업은 더욱 강인해지는 법이다. 수입선 다변화 조치가 풀린다 해서 생존에 영향이 미치는 기업은 온실 속의 화초나 다름이 없다. 특히 최근의 빅딜 등으로 야기된 설왕설래를 하루빨리 진정시켜 이제는 모든 것을 제품 하나로 승부를 걸겠다는 각오로 전열을 새롭게 정비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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