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원군 천주교 선교원의 이구원 군(9)은 한번도 제 발로 걸어 방을 나서본 적이 없다. 직접 밥을 입에 떠 넣어 본 적도 없다. 날 때부터 두 팔과 다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마저 어려운 가정형편을 걱정해 구원이를 포기했다. 부모님이 이 군에게 남겨준 것이라곤 남과 다른 신체와 세상을 구원하라는 뜻의 이름 두자뿐.
하지만 구원이는 누구보다 맑게 살아가고 있다.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오시는 선생님에게 지도를 받는 게 고작이지만 5학년 수준의 학습능력으로 주위를 놀라게 한다. 또 방안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머리로 농구를 하는 명랑한 아이다.
그런 구원이가 요즘 푹 빠져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컴퓨터다. 그는 지난달 초 SK텔레콤의 도움으로 인터넷에 연결된 PC와 무료 ID를 마련했다. 입으로 자판을 두드려야 하므로 남들처럼 빨리 칠 수는 없지만 컴퓨터로 전하는 편지는 지금까지는 맛볼 수 없었던 재미와 기쁨을 준다. 또래 친구나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운 구원이에겐 PC통신과 인터넷이 바로 「세상으로 열린 창」이기 때문이다.
구원이와 같은 예는 이외에도 많다. 미국의 크리스타 카우딜(24)은 어렸을 때부터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장애인. 그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화법을 알고 있는 사람하고만 제한적으로 대화할 수 있었다. 아니면 비싸고 구하기 힘든 번역기를 통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 발달한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 덕분에 카우딜은 수시로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바로 문자를 다시 점자로 바꾸어주는 특수장치 덕분이다.
그녀는 이 장치를 이용해 인터넷 웹사이트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고 전자메일을 통해 대화를 나눈다. 카우딜은 미국 과학재단의 후원을 받아 점자발생기를 노트북 컴퓨터와 연결해 말을 점자로, 점자를 다시 말로 바꿔주는 프로젝트(http://www.asel.udel.edu/gesture/SpchBrlle/)를 진행중이다. 이 장치가 개발되면 어디에 가더라도 주위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사회와 원하지 않게 격리돼야만 했던 많은 장애인들이 세상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아직 기술개발이 계속되고 있고 상용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제품도 있지만 조만간 보다 많은 장애인들이 신체적 불편함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IBM의 「홈페이지 리더」는 시각장애인들도 인터넷을 즐길 수 있도록 웹사이트 정보를 소리내 읽어주는 프로그램. IBM의 TTS(Text To Speech)기술인 「비아보이스 아웃라우드」와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활용해 웹에 올려져 있는 정보를 이해하기 쉬운 포맷으로 읽어주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들도 일반인들처럼 인터넷 정보를 접할 수 있다. 특히 음성인식 기능을 이용해 「다시 읽기」 「되돌아가기」 등 간단한 명령어는 음성으로 처리할 수 있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반신불수인 사람들을 위해 뇌파를 이용하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뇌에 전극을 연결해 컴퓨터 스크린상의 마우스를 조작하고 메시지를 작성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중이다.
최근 독일의 한 연구소에서는 전극과 와이어를 루게릭병이 상당히 진전된 두 명의 환자들의 머리 표면에 부착해 실험했다고 밝혔다. 이 결과 환자들은 특정 종류의 뇌파를 이용해 마우스를 조정하는 방법을 우선 배우고 숙달과정을 통해 1분에 두 글자 정도를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개발한 「이글아이즈(EagleEyes)」라는 시스템은 눈과 머리의 움직임을 감지해 컴퓨터 커서를 움직일 수 있다.
장애인을 위한 학습프로그램 개발도 한창이다. 미국의 템플대는 장애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는 「가상 전기 실험실」을 만들었다. 이 실험실은 실제적인 실험조건과 똑같이 만들어져 있어 학생들이 직접 실험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게 한 것. 학생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와 머리 신호, 포인터 및 다른 입력장치를 이용해 전기공학 실험에 필요한 계측기를 모으거나 동작시킬 수 있다. 실험을 하다가 의문점이 있으면 컴퓨터 화면에 마련돼 있는 가상 사무실에서 자료를 보거나 파일을 가져올 수도 있다.
국내에도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기는 하지만 장애인을 돕는 다양한 제품들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삼성SDS·거원시스템·삼성전자 등에서 웹페이지나 워드프로세서의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TTS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하고 있으며 한국맹인복지연합회도 최근 윈도환경의 화면을 음성으로 들으며 작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리눈98」을 내놓았다.
이 프로그램은 윈도98의 바탕화면과 메뉴는 물론 키보드 입력내용을 음성으로 출력하며, MS워드·이야기97·인터넷익스플로러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 앞을 못 보는 장애인들도 쉽게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다. 또 지난해 말 문화관광부가 제작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서편집기 「새소리문」도 다양한 문서를 점자로 출력, 장애인들의 문서작성은 물론 일반인과의 의사소통을 지원한다.
전자통신연구원은 청각장애인이나 고령인 등 청각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골도(骨導) 전화기를 개발, 대우통신을 통해 상용화했다. 이 특수전화기는 청각장애인이나 노인이 보청기 등 외부 보조기기를 이용하지 않고서도 귓속에 있는 골도 청각을 이용해 정상인처럼 통화할 수 있다.
이외에도 손을 사용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한 발마우스, 시각장애인이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각장애인용 유도신호장치 등 다양한 제품이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도 하나 둘 생겨나는 추세. KBS는 올 초 장애인 전문 인터넷 방송인 「사랑의 광장(http://www.kbs.co.kr/lovevoice)」을 개설했다. 이 방송은 장애인들이 인터넷에 접속해 각종 정보를 교환하고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것.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방송순서를 리얼오디오로 제공하며 각종 방송프로그램을 주문형오디오(AOD)나 주문형비디오(VOD) 방식으로 서비스한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의 경우 장애인들을 위한 기술 개발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장애인 단체 관련 한 관계자는 『국내의 경우 장애인 관련 기술 개발이 대부분 정부나 관련 단체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며 『IBM·마이크로소프트 등 해외 기업들은 장애인지원 제품 개발을 음성인식, 두뇌인터페이스 등 첨단기술 개발의 기회로 삼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의 인식전환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장윤옥기자 yo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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