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좌절이 교차하는 첨단산업의 산실, 실리콘밸리. 이곳의 벤처투자자들은 "야휴"와 "아마존" 신화를 뒤이을 "유망기업"을 찾기 위해 분주하다. 이들 투자자가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기술이나 시장성이 아니다. 바로 해당 기업에 근무하는 사람의 가치와 경영진의 면모다. 그 기업에 얼마나 유능하고 성실한 인재들이 포진해 있고 이들을 관리하는 경영진과 간부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 경영진이나 간부의 능력은 그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시하는데 최근에는 경영진의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30초 동안 그 기업의 비전을 제시해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엘리베이터 스피치"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기업 경영자나 간부가 상대방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는 짧은 시간동안 얼마만큼 그 기업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보사회일수록 자본이나 고도의 기술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지식이 더 중요해진다.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 특히 간부들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업무에 참여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는냐에 기업의 운명이 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보사회는 사람이 곧 국가는 물론 기업의 최대자원인 "사람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우수한 인적자원의 힘은 단순히 연구개발 분야나 마케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가전업체인 제너럴일렉트릭(GE)은 일반적으로 「저부가가치」라고 인식됐던 부서에 고급인력을 과감히 배치, 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GE는 지난 81년 콜센터의 상담원을 모두 5년 내외의 경력을 갖춘 대졸자들로 채우고 다른 기업보다 월등히 높은 보수를 제공했다. 이들 상담자는 고객의 불만을 접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다음 상품설계와 개선에 필요한 정보로 만들었다. 그 결과 이 회사의 신제품 생산시기, 디자인은 물론 마케팅 계획까지 이들 상담원의 조사자료에 따르게 됐다. 어떤 조직이든 구성원에 따라 얼마든지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래서 우수한 기업일수록 뛰어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투자와 관리, 제도가 남다르다. 직원들에 대한 수시교육과 능력에 따른 급여지급은 기본이다.
일본 소니의 대학원출신 기술직 사원들은 초임부터 모두 다르다. 채용시 엔지니어들이 직접 기술면접을 해 우수하다고 인정되면 사규에 규정된 금액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후보가 된다. 후보는 3개월의 테스트 기간을 거쳐 틀림없다고 판단되면 해당 급여가 확정된다. 이 평가는 1년마다 이뤄지기 때문에 직원들은 물론 간부들도 입사 후에 지속적으로 능력개발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애플컴퓨터의 전회장 존 스컬리는 『애플은 사원이나 간부들에게 평생직장을 제공할 수는 없다. 5년이나 10년의 고용을 보장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2년도 무리다. 애플이 약속할 수 있는 것은 근무하고 있는 동안 항상 배울 수 있는 여건과 도전적인 직무를 제공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요구하지 않고 평생고용을 약속하지 않는 대신 배움과 도전의 기회를 약속한다는 게 애플이 내세우는 장점이다.
창의성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와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있는 기업도 많다.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업체인 인텔은 일반 사원들의 의견을 기업의 의사결정에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이견과 수용(Disagreement and Commit)」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토론중에는 자유롭게 이견을 제시하지만 결과에는 따른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업환경에서는 무조건 복종하는 식의 회의는 가치가 없다는 판단 아래 직원들의 자유로운 의사개진을 촉진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소프트뱅크사는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10명 내외의 소규모 팀제를 운영하고 있다. 사업팀의 팀장 이상에게는 급료와 상여 외에 실적에 따라 손정의 회장 소유 주식을 10년 분할로 받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조직구성원들간의 교류 활성화를 위해 복도나 개인집무실, 피서지 등 어디서나 격의 없는 회의를 한다. 특히 1년에 한 번 이상 사내 고위급 간부들이 참여하는 휴가회의는 유명하다. 휴가를 겸한 이 회의에서는 자사 제품의 경쟁전략과 고객지원 등은 물론 관련 서적을 읽고 난 소감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한다. 또 회의 내용을 다른 직원들도 공유할 수 있도록 비디오, 오디오, 메모 형식으로 남겨 회람한다.
최근 국내 기업들에도 우수한 인재 확보를 위해 다양한 제도가 도입되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가 연봉제와 스톡옵션제. 기업이 창출하는 가치를 다시 사원들에게 되돌리고 능력 있는 사원을 우대해 보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자는 게 이 제도의 취지다.
국내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일정한 비율의 주식을 미리 정해 놓은 가격에 살 수 있도록 하는 스톡옵션제를 실시하고 있다. 또 중소 벤처기업들은 물론 삼성·LG·대우 등 대기업들도 연봉제 도입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 삼성은 지난해까지 20% 내외였던 연봉제 임금격차를 40%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전자는 새 상품을 개발하거나 매출증가에 크게 기여한 직원들에게 최고 월급여의 2배를 보너스로 지급하는 연봉제를 도입했다. LGEDS·삼성SDS 등 시스템통합(SI)업체들도 이미 연봉제를 도입해 시행중이다.
연봉제는 고용여부를 매년 재계약한다는 점보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직급이 올라가는 연공서열제가 파괴됐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이제 대리나 과장, 부장 같은 직급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리가 팀장이 되기도 하고 부장급 팀원도 생겨나고 있다. 직급은 사장과 사원이지만 사장보다 사원의 월급이 더 많은 예도 있다. 임원들의 승진연한도 점차 짧아지고 있는 추세.
한통프리텔은 3명의 간부를 이사로 승진시켜 30대 이사를 4명이나 보유한 회사가 됐다. 세계 최초로 광중계국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은 LG텔레콤의 이효진 상무보도 30대 임원으로 유명하다. LG인터넷 이양동 사장은 경쟁사에서 근무하다 공채로 발탁된 케이스. 이외에 하나로통신 등에도 30대 임원이 포진하고 있다.
학력이나 경력을 중시하던 채용관행도 변화하고 있다. 정해진 룰만을 고수하는 모범생보다 끼있고 개성있는 인재를 발탁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추세. 실제로 일부 대기업은 해커나 소프트웨어 공모전 당선자를 학력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특채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기업들의 움직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직급파괴, 지식관리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껍데기만 들여와 운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한 벤처기업의 경영자는 『우리 기업들이 진정으로 미래의 지식정보사회를 선도해가려면 앞다퉈 외국의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그 제도가 성과를 낼 수 있는 공정한 평가, 실효성 있는 인센티브, 자유로운 제안 분위기 조성 등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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