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와 LG반도체를 통합하는 반도체 빅딜은 마치 마술 같다.
관객은 마술사의 의도는 알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의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양사 합의에 의한 원만한 구조조정의 극적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마술사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고 관객은 이제 쇼의 클라이막스를 보기 위해 숨을 죽인 채 기다리고 있는데 마지막 천을 열어젖히는 일이 어렵기만 한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우려되는 것은 반도체 빅딜의 본질이 마술 같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마술에서 실수란 원래가 드문 일이지만 설혹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패가망신이나 평생 불구자가 될 정도로 치명상을 입지는 않는다. 보호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도체 빅딜은 그렇지 않다. 흥미의 대상도 아니지만 마술처럼 한번 시도해 실패했다고 해서 다시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보호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반도체 빅딜에는 국가 경제의 일부분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최근 『반도체 빅딜은 마라톤에서 결승점 1㎞를 남겨두고 있다』 『재벌그룹 회장의 결단만 남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빅딜의 마지막 단계인 양수도 협상 타결로 보인다.
그런데 정부는 반도체 투자를 대폭 늘리겠다고 한다. 서정욱 과학기술부 장관이 1일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국정개혁 보고를 통해 오는 2010년까지 비메모리 반도체분야에 8228억원을 투자, 우리나라가 세계 반도체시장 점유율 3위를 확보하도록 집중적인 지원계획을 밝혔다.
이같은 정부의 입장을 보면 반도체분야에 투자를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종잡기 어렵다. 정부가 반도체 빅딜을 유도한 근본이유가 반도체분야의 과잉·중복 투자 때문이라고 했는데 반도체 빅딜이 채 마무리도 되기 전에 또 한편으론 반도체산업의 투자를 집중 지원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재계의 엄청난 반발을 무릅쓰고 추진되고 있는 빅딜이 당초 그것을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결말이 나지 않고 있는 것도 바로 경제논리의 실종 때문이라는 지적은 심사숙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의 산업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입장정리는 필요하다. 또 빅딜의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호장치도 있어야 한다.
이미 LG반도체는 현대전자에 합병키로 함에 따라 생산성이 떨어지고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신인도를 잃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시장조사업체들이 내년부터 반도체시장이 호경기로 돌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데도 우리는 스스로 그 기회를 차버린 꼴이 됐다.
이제 더욱 큰 문제는 반도체 빅딜이 완전히 성사된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점이 남았다. 현대와 LG의 통합은 그런대로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그것이 국가 반도체산업에 미치는 부작용은 결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지금도 반도체 소자분야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기업들이 있다는 점인데 이에 대해 정부는 앞으로 반도체 소자분야에 투자를 못하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또 반도체 장비를 비롯한 소재·재료산업에 대한 대책이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반도체 장비산업은 초창기로서 중소업체들이 10년 가까운 각고의 노력 끝에 이제 겨우 경쟁력을 갖추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지난해까지 반도체 시황이 좋지 않고 특히 이번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빅딜로 큰 수요처를 잃어 버린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최근 외국 업체에 회사를 넘기거나 다른 사업으로 방향전환을 모색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며 그나마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업체들도 덤핑판매 등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반도체 장비산업 자체가 붕괴될 위험성이 있다. 엄청난 투자비를 요하는 반도체 재료나 소재쪽도 활기를 잃기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영향으로 반도체 소자업체들도 주변산업이 취약해져 가격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이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것이 빅딜 이후의 반도체산업 밑그림을 그리고 비전을 제시하기 이전에 해야 하는 과제다. 안정적인 산업발전은 흔들림 없는 정책이 뒤따를 때 보장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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