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Y2K> 엄청난 재앙이냐… 찻잔속 태풍이냐…

 컴퓨터 2000년(Y2K)문제 해결시한이 10개월도 채 남지 않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최근 Y2K문제에 대응하는 각계의 움직임이 한결 빨라지고 있다. 정부차원의 Y2K관련 기능이 한층 강화되고 민간기업 역시 발빠른 대응체계를 갖춰 나가고 있다. 항공·항만·통신 등 사회 각 분야의 대응자세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어 이제는 지방자치단체·정치권·사회단체에까지 Y2K대응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올해가 Y2K문제 해결시한의 마지막해이며 특히 올상반기에 문제대응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지 않으면 사실상 대응시기를 놓칠 것이라는 인식이 폭넓게 확산됐기 때문이다. 또 연초부터 Y2K문제가 원인으로 보이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회 전반에 경종을 울렸고 지난해부터 정부와 언론의 지속적 홍보효과가 이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요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Y2K문제란 컴퓨터 프로그램의 연도표기를 4자리로 하지 않고 관행적으로 끝의 두자리만으로 줄여 표기함으로써 컴퓨터가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오류를 말한다. 즉, 2000년의 경우 컴퓨터가 연도 끝의 두자리인 「00」을 2000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1900년 등으로 엉뚱하게 인식함에 따라 예상치 못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상황을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지, 아니면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다만 가상시나리오를 짜보면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소지가 많기 때문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Y2K문제는 인류가 정보화 물결로 넘쳐날 새 밀레니엄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가를 심사받는 입시시험이 됐다. Y2K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사나 자국 시스템의 보완뿐만 아니라 관련된 외부시스템까지 완벽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Y2K시험은 정보시스템의 완벽한 체계는 물론이고 모든 국가의 상호협력이라는 평화의 메시지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입시시험을 무난히 통과할 경우 인류는 순탄한 21세기를 열어갈 것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그 결과는 인류는 컴퓨터 오류에 의한 재앙이라는 대가로 나타날 전망이다.

 Y2K문제가 이처럼 21세기를 준비하는 시험대로 평가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계각국의 대응도 보다 강화되는 추세다. 각국은 Y2K 예산을 집중 배치, 문제해결을 주요 정책의 하나로 추진하는 한편 Y2K문제가 실제로 발생했을 때에 대비한 비상대책까지 마련해 놓고 있으며 Y2K가 가져올 소송대란에 대비한 법적대응 방안까지 수립하고 있는 상태다.

 미국은 정부차원에서 Y2K 대비태세를 3월중으로 완료할 것을 각 부처에 권고하고 있으며 민간차원에서도 다른 나라들보다 한발 앞서 지난해 7월부터 금융분야와 대기업을 중심으로 산업별 모의적응실험에 나서는 등 이 문제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미국 월가의 28개 증권업체들은 공동으로 증권전산망의 Y2K 모의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유통·통신·자동차 등 제조분야에서도 잇따라 모의실험을 실시했거나 실시할 계획이다. 특히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Y2K로 인한 금융혼란 가능성에 대비해 올해말까지 2000억달러의 현금을 준비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Y2K 대비 행동계획」을 마련, 주요기업이 Y2K 준비상황을 분기마다 당국에 보고토록 하고 있다. 그 결과 은행 정보시스템의 Y2K문제가 거의 해결됐고 증권분야도 미리부터 이 문제에 대비했으며 통신·전력·항공·철도 등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주요 부문도 순조로운 진행을 보이고 있다.

 유럽의 경우 영국과 네덜란드·스칸디나비아국가를 중심으로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고 그동안 유럽단일통화인 유로체제의 출범에 대비하느라 시간을 빼앗긴 독일이나 프랑스도 최근 대응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캐나다는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계엄령을 선포, 군을 투입해 경찰과 협력해 소요 등을 진압하게 한다는 「Y2K 비상사태령」을 마련할 정도로 Y2K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부터 정부주도의 하방식으로 Y2K 대응이 시작됐지만 단기간에 수준을 선진국 정도로 끌어올렸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차원의 대응조직이 실무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보강됐고 산업별 시스템의 모의실험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Y2K문제가 21세기로 진입하기 위한 통과의례로 기정사실화하면서 낭비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Y2K를 생산적으로 승화시키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먼저 Y2K문제 대응이 기업의 정보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자사 시스템은 물론 협력사나 관계된 시스템을 모두 손봐야 하기 때문에 차제에 모든 관련시스템을 재정비함으로써 시스템 생산성을 전반적으로 한 차원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송우정보의 신종철 사장은 『그동안 어떤 기업도 정보시스템이나 자동화시스템을 전사적으로 뒤져볼 기회가 없었다』며 『Y2K 대응을 계기로 버릴 것은 버리고 보존할 것은 체계적으로 보존함으로써 활용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Y2K가 국민 정보화마인드를 확산시키는 것도 보이지 않는 큰 효과다. 이전까지만 해도 정보시스템의 관리는 전산실 실무자만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영자가 적지 않았고 일반 국민들도 그동안 컴퓨터 및 정보시스템의 역할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Y2K문제는 컴퓨터가 사회전반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알려줌으로써 그 무엇보다 컴퓨터를 가깝게 느끼도록 해준 것이다.

 Y2K는 특히 정부가 향후 주력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천명한 정보산업의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극심한 불황의 탈출을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산업 활성화에는 Y2K가 메모리 수요를 촉발시켰다는 배경이 있고 하드웨어시스템이나 일부 소프트웨어 수요증가의 이면에도 Y2K가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Y2K 인력수출이 활성화하면서 그동안 최대 이슈인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다소 과장된 얘기지만 Y2K가 세계 각국의 상호협력 자세를 뿌리내리게 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현재 Y2K문제와 관련, 국가간 상호협력이 추진되는 사례를 보면 미국과 러시아가 Y2K로 인해 핵미사일이 오작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동 조기경보센터를 설치하기로 합의했고 한국 등 18개 아태국가 대표들은 최근 마닐라회담에서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와 다른 지역 국가에 Y2K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이들 국가간 공동프로젝트도 추진하기로 했다.

 EU의 경우 회원국 협의체를 통한 공동솔루션 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고 남북한과 중국·러시아·몽골 등은 이달 29일부터 5일간 중국 베이징에서 Y2K 항공분야 비상협의를 갖기로 했다.

 특히 남북한이 군사분야에서 Y2K에 의한 우발사태를 막기 위해 상호협력하자는 논의가 시도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상상도 못했던 일로, Y2K가 남북한간 군사분야 전반의 상호이해와 협력을 유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성급한 기대마저 나오고 있다. Y2K가 어차피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면 보다 적극적인 대응으로 새 밀레니엄에 대비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창호기자 ch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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