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웨스트(Go West)」. 이는 알카텔·지멘스·에릭슨·노키아 등 유럽 통신장비업체들의 서진정책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과거 보수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왔던 이들은 최근들어 적극적으로 미국내 네트워크업체를 사들여 미국 네트워크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프랑스 통신업체 알카텔은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네트워크업체 자일랜을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에 매입했다. 바로 이틀 뒤 알카텔은 미국 인터넷업체 어슈어드 액세스 테크놀로지(AAT)를 3억5000만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알카텔은 이미 지난해 10월 미국 기가비트이더넷 업체 패킷스타를 3억1500만달러의 현금인수 방식으로 매입한 바 있다.
독일 지멘스도 미국 네트워크시장 진입에 본격 나서고 있다. 지멘스는 지난해 6월 미국 네트워크업체 스리콤과 자본금 1억달러를 공동 출자하는 형태로 음성·데이터 통합장비 합작사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지멘스는 이달 들어 캐슬네트웍스와 아르곤네트웍스 등 2개의 미국 네트워크업체를 인수하는 동시에 이들을 통합, 「유니스피어 솔루션스(Unisphere Solutions)」라는 네트워크업체를 설립했다.
이와 함께 지멘스는 통신사업자를 대상으로 네트워크장비를 판매하는 스리콤의 일부 사업부 매입에 관해 스리콤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웨덴 통신장비업체 에릭슨도 미국 네트워크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에릭슨은 지난해 9월 미 원격지장비업체 어드밴스트 컴퓨터 커뮤니케이션(ACC)을 인수했다. 당시 에릭슨은 ACC의 대지분을 확보하고 있던 캐나다 네트워크업체 뉴브리지에 2억8500만달러를 지불하고 ACC를 전격적으로 사들였다.
또한 에릭슨은 현재 초고속 라우터시장에서 시스코를 추격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주피터네트웍스에 지분을 투자하고 있고 미국내에서 스위칭기술 개발이 활발한 보스턴에 네트워크기술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핀란드의 통신장비업체인 노키아는 지난 97년말 미국의 네트워크업체인 입실론 네트웍스를 1억2000만달러에 인수한 바 있다.
유럽 통신장비업체의 이같은 움직임은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얼마 전까지 이들은 인수전략보다 미국내 네트워크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부족한 네트워크기술을 확보해왔다.
이들의 전략변경은 최근 네트워크업계에 불어닥치고 있는 음성·데이터 통합열기 외에도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대부분의 미국 네트워크업체는 실리콘밸리를 모태로 사업을 펼쳐왔다. 이같은 배경으로 자일랜·AAT·입실론 등은 실리콘밸리의 다른 벤처기업처럼 다양한 기술을 빠른 시간 내에 개발, 이를 상용화하는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따라 유럽의 통신장비업체들은 미 네트워크업체 인수를 통해 현지 네트워크 신기술을 섭취,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음성기술과의 통합을 빠른 시간 내에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인터넷이 태동했고 현재 인터넷사업이 가장 활발한 미국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는 네트워크업체들에 유리한 시장조건을 마련해주고 있다.
이는 현재 미국지역이 타지역에 비해 다양한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와 데이터기반 통신사업자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자일랜의 설립자인 재미교포 김윤종(미국명 스티브 김) 회장에 따르면 자일랜은 지난해 3억4800만달러의 매출액 중 상당부문을 ISP를 통해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통신장비업체의 미국시장 진출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바로 미국기업들의 치밀한 마케팅 능력이다. 일반적으로 유럽지역에서는 마케팅에 비해 기술력이 상품구매에 우선시되는 데 비해 미국은 마케팅활동이 제품판매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통신장비업체들은 미국기업 인수를 통해 인수기업의 마케팅 노하우도 함께 사들일 수 있는 점이 최근 잇단 미 네트워크업체 인수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었다.
이외에 유럽 통신장비업체들은 미국내에서 다소 생소한 브랜드 이미지를 대폭 신장할 수 있고 또한 네트워크장비 사업을 진행하면서 자사의 음성장비를 곁들여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시장 진출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현재 알카텔과 지멘스가 미국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열의를 보이고 있는 반면 에릭슨과 노키아는 이들에 비해 다소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에릭슨과 노키아도 앞으로 인터넷 성장과 맞물려 네트워크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지멘스와 알카텔의 예를 따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에릭슨과 노키아는 미국내 주요 네트워크업체 인수의 핵으로 떠오를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한편 루슨트·노텔 등 북미 통신장비업체들은 「유럽이 몰려온다」며 최근 인수한 기업의 네트워크기술과 자신들의 통신장비기술간의 통합에 주력하는 한편 이들과 맞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 마련에 부심중이다.
<정혁준기자 hjjoung@etnews.co.kr>
국제 많이 본 뉴스
-
1
모토로라 중저가폰 또 나온다…올해만 4종 출시
-
2
단독개인사업자 'CEO보험' 가입 못한다…생보사, 줄줄이 판매중지
-
3
LG엔솔, 차세대 원통형 연구 '46셀 개발팀'으로 명명
-
4
역대급 흡입력 가진 블랙홀 발견됐다... “이론한계보다 40배 빨라”
-
5
LG유플러스, 홍범식 CEO 선임
-
6
5년 전 업비트서 580억 암호화폐 탈취…경찰 “북한 해킹조직 소행”
-
7
반도체 장비 매출 1위 두고 ASML vs 어플라이드 격돌
-
8
페루 700년 전 어린이 76명 매장… “밭 비옥하게 하려고”
-
9
127큐비트 IBM 양자컴퓨터, 연세대서 국내 첫 가동
-
10
'슈퍼컴퓨터 톱500' 한국 보유수 기준 8위, 성능 10위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