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가전이 사라지고 있다.
냉장고·세탁기·전자레인지·에어컨 등 가전제품의 색상이 과거 흰색에서 이제는 다양한 색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으레 하얀 색상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가전제품을 총칭해온 백색가전(White Goods)이라는 명칭이 점점 어색해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명칭을 새로 찾아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
지금까지 가전제품은 채색된 색상에 의해 냉장고·에어컨·세탁기 등의 백색가전과 TV·VCR·오디오 등의 갈색가전(Brown Goods) 등으로 구분돼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백색가전제품 중 흰색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색상이 다양해져 백색가전이라는 명칭을 무색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전자레인지의 경우는 빨간색이나 노란색 등 원색의 색상을 입히는 것이 보편화될 정도로 색상이 다양화됐으며 세탁기도 실버(은색)나 그린·블루 등의 색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나마 아직 흰색 계통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제품은 냉장고와 에어컨 정도. 하지만 이들 제품에서도 옅은 노란색이나 붉은색·회색 등이 가미된 베이지색이나 아이보리색 등으로 점차 바뀌고 있는 추세다.
특히 에어컨의 경우 아직은 베이지색이나 아이보리 등 흰색 계통이 주류를 이루고는 있으나 지난해 LG전자가 컬러화 전략을 펴면서 베이지색과 그린·블루 등 다양한 색상을 채용하기 시작한 데 이어 삼성전자도 올해 신제품에 아이보리·브라운·블루 등의 색상을 채용하는 등 본격적인 컬러화 시대를 맞고 있다.
LG전자·삼성전자·대우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들이 이들 제품에 대한 사업부를 백색가전 사업부라 하지 않고 가전사업부 내지는 리빙사업부나 홈어플라이언스사업부 등으로 고쳐 부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가전제품의 컬러화가 급진전되고 있는 것은 가전제품이 생활용품으로서뿐만 아니라 집안을 장식하는 가구로서의 역할 또한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아파트가 대표적인 주거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아파트 주거공간에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색상의 가전제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신세대감각을 원하는 청소년층 및 신혼부부들이 가전제품의 주 수요층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도 가전제품의 색상다양화를 촉진시키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백색가전의 컬러화 현상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실제 최근 독일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백색가전 전시회인 「99 도모테크니카 쇼」는 가전제품의 컬러화 추세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자연색 그대로」라는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소형가전제품은 물론 냉장고·세탁기 등 대형 가전제품에도 빨간색 등 원색을 사용한 제품들이 대거 출품돼 가전제품의 컬러화가 세계 가전산업의 새로운 흐름임을 입증했다.
이에 따라 업계관계자들은 이제부터라도 가전제품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해온 화이트 굿이나 브라운 굿 등의 영어나 백색가전 등 일본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을 대신할 수 있는 말을 찾아내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에어컨·냉장고·세탁기 등 이른바 백색가전제품이 전기제품인 만큼 가정용 전기제품, TV·VCR·오디오 등 브라운 굿은 가정용 전자제품이라는 용어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전업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돼온 백색가전이라는 용어가 이제는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퇴출시점을 맞고 있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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