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봉 한국하이네트 사장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한 국가에서 육성하는 산업도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건설과 철강 등은 그 대표적인 산업으로 정부의 대폭적인 후원 아래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발전했다.
산업사회가 정보사회로 넘어가면서 정부는 이제 새로운 육성산업으로 정보산업을 선택했다. PC보급이 활발하고 휴대통신 사용자가 급증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정보산업은 유망산업이며 연관산업에 대한 파급효과도 커 정부의 육성의지는 바람직하다.
그런데 정보산업의 육성은 그 산업 자체를 육성하는 차원을 넘어 국내 산업 전반에 걸쳐 정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정보 인프라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우리 산업을 견실하게 되살릴 수 있는 초석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까지 기업의 정보 인프라는 생산자원관리(MRP)였으나 이제 전사적자원관리(ERP)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ERP는 기업의 경영 기반을 재구축하는 데 있어서 최적의 정보시스템으로 인정받는다. 구조조정이 활발한 국내 기업에게 꼭 필요한 도구인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들은 ERP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우리 실정에 맞는 국산 ERP를 찾는 기업이 요즘 부쩍 늘어났다.
일부에서는 국산 ERP가 중소기업에서나 쓸 만할 뿐 글로벌한 경영체제의 기업에는 맞지 않는다고 단정한다. 그러면 외산 ERP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국내 기업이 많은가. 나는 그리 많지 않다고 본다.
국산 ERP는 기업의 독특한 업무 프로세스에 맞게 기능을 수정하는 맞춤형이 일반적이다. 이에 비해 외산 ERP는 오랜 구축 노하우에서 나온 표준에 따라 제품을 설계하고 이를 그대로 적용하는 기성복형에 가깝다.
외국 기업과 달리 국내 기업에서만 볼 수 있는 업무 프로세스가 많다.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국내 기업들은 정식 주문절차를 밟지 않거나 거래가격이 명확하지 않아도 물건을 납품하고 사후 처리한다. 또한 거래처별로 거래방식을 통일한 기업도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이러한 관행은 정착된 계약사회인 선진국, 특히 ERP를 구축한 선진기업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러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우리 기업들은 우리의 법·제도와 문화·경영 환경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업무관행을 충실히 반영한 한국형 ERP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물론 ERP의 핵심 키워드인 글로벌화를 포기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ERP시스템에 맞춰 기업조직과 업무프로세스를 바꾸려면 내부 저항의 요인이 커 그 효과가 반감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일부 기업은 구축경험이 적은 국산 제품을 믿을 수 없어 검토단계에서부터 거론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여기에서 ERP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ERP는 경영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다. 그리고 이를 성공적으로 활용하느냐 여부는 업무환경에 대한 적합성과 사용자의 적극적인 노력에 달려 있다. 외국 실정에 맞는 외산 ERP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외국 사례에 우리가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분명한 것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화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정보 인프라인 ERP시스템을 우리 기업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의 ERP 표준시스템에 대해 토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국내 업체들이 공동모임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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