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전자산업 40년> 인터뷰.. 대덕전자 김정식 회장

 그는 국내 인쇄회로기판(PCB)업계의 종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대덕산업·대덕전자를 설립, 오늘날 세계 10대 PCB업체로 일궈냈다.

 국내 인쇄회로기판산업을 얘기할 때 항상 김정식 회장이 그 중심에 서있을 정도로 이 산업의 발전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오늘날까지 PCB가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중요한 부품인 것을 감안하면 김 회장이 국내 PCB산업을 선진화한 것은 곧 전자산업을 선진화한 것으로 보는 것도 무리는 없다.

 국내 전자부품산업의 태동기였던 58년 통신기기업체인 대영전자를 설립, 전자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김 회장은 65년 무역업체인 대덕산업을 인수, 국내 처음으로 단면 인쇄회로기판을 생산했다.

 『대영전자가 생산하던 통신기기용 PCB를 구하기 위해 서울 장사동 일대를 누볐으나 쓸만한 것을 구하지 못해 직접 제조에 나섰다』는 김 회장은 『특히 한국정밀기기센터(FIC)의 주선으로 전자공업기술 조사차 미국·유럽을 방문, 현지 PCB산업체를 둘러본 것이 PCB사업에 생애를 바쳐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측에서는 PCB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전자공업진흥 8개년 계획에서 PCB를 제외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김 회장은 정부 요로를 찾아다니며 PCB의 중요성을 역설, PCB가 이 계획에 포함되도록 했다는 것.

 김 회장은 72년 일본 우라하마전자와 합작으로 현 대덕전자의 전신인 한국우라하마전자를 설립, 국내 처음으로 양면 PCB를 생산, 국내 PCB산업이 또한번 도약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로 대덕산업·대덕전자 앞에는 항상 국내 처음, 국내 최대,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지닌 PCB업체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니게 된다.

 『73년 대덕이 개발한 단·양면 PCB를 PCB산업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개최된 가전전시회(CES)에 출품, 외국 바이어들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았을 때 PCB사업에 손대길 잘했다는 보람을 느꼈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이다.

 대덕전자를 오늘날 세계적인 다층인쇄회로기판(MLB)업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만든 전기가 이때쯤 마련됐다. 다름 아닌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국산전자교환기 개발사업이 진행된 것이다. 국산전자교환기 개발사업은 당시 수요가 거의 없던 양면 PCB의 수요를 끌어 올리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으며 그 공로로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국내에서는 PCB산업이 황금알은 낳는 첨단산업으로 부각되면서 신규업체들이 대거 탄생하게 됐다.

 이후 대덕은 컬러TV를 비롯한 가전산업의 부흥과 전자교환기의 보급 확대에 힘입어 사세가 날로 번창했으며 반월공단으로 생산공장을 이전, 제2의 도약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어 82년 4월 국내 처음으로 4층 MLB를 개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대덕전자는 국내 PCB업계로는 처음으로 85년 수출 1천만불탑을 수상했다.

 「인간과 기술 중심, 고객 제일주의」를 경영철학으로 갖고 있는 김 회장은 인쇄회로기판산업은 창의력이 우수하고 인적자원이 풍부한 한국이 세계시장을 제패할 수 있는 첨단 전자부품산업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정부·업계에 전파하는 전도사 역할을 하느라 오늘도 하루해가 모자라는 실정이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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