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101)

 나는 사장에게 명심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나에게서 다짐을 받았다. 실패할 경우 목숨을 내놓을 만큼 심각한 일은 아니었지만 아마 사표 정도는 내야 할 것이다. 나로서는 목을 건 승부였다. 회사에서 투자하는 6개월의 자금이나 시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나 컴퓨터산업이 활성화되어 있지 못한 당시 계속 그 사업을 추진하느냐, 아니면 업종을 바꾸느냐는 갈림길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경영진에서 보면 심각했던 것이다. 그만큼 허 실장과 최 사장이 나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허 실장도 물론이지만 최 사장이 나를 믿고 맡긴 것은 어디까지나 거의 모든 기술자들이 보따리를 싸고 회사를 떠난 데 있었다. 그렇다고 나를 무작정 믿었던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나는 선배 기술자들을 제치고 우수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든지 CPU 수리와 같은 기능적인 일도 앞서 있었다. 속도와 민첩성이 앞섰고 장애요인에 대한 인지도가 빨랐다.

 그것은 한때 선배 기술자들의 시기심조차 일으켜서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도 있었다. 배용정 선배는 예외였으나 다른 선배 기술자들이 나를 따돌리는 인상을 줬던 것이다. 서울공대 출신이었던 그들이 겨우 상고를 졸업한 나와의 경쟁에서 지자 자괴감조차 느끼는 인상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한껏 무시하였다. 마치 컴퓨터 기초를 모르는 기능공 정도로 몰아붙였다. 그 후에 나는 나서는 것을 절제했다. 선배 기술자들이 기계를 가지고 헤매고 있을 때도 나는 모른 척하고 뒷전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주 쉬운 프로그램조차 기본 데이터 영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헤매고 있었다. 한마디 거들면 해결이 됐지만 그들에게서 미움을 살 것이 두려워 침묵을 강요받은 일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거의 외국 원서를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웠다. 배용정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 모든 지식을 습득한 것으로 알았다. 더이상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장으로부터 개발 허락을 받은 나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 선배 기술자들이 데모를 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한 것이 나를 구제해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사장실을 나오면서 휘파람이라도 불 듯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별로 좋은 느낌이 들지 않는 비서 김양희에게 한손을 들어 흔들면서 눈인사를 보냈다. 그러자 그녀는 약간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최영준씨, 기분이 끝내주는데 안에서 뭐 좋은 소식이라도 들었나요? 혹시 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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