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계측기산업 전략적 육성

조병순 시앤시인스트루먼트 사장

 온도·압력·중량·길이·시간·유량·속도·체적·전자기파·PH 등을 측정하는 계측기는 현대산업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기기다. 예를 들어 시간측정기인 시계를 얼마나 정확히 만드냐에 따라 우주선이나 ICBM 같은 것을 쏘아올릴 수도 있다는 것을 연상해 본다면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몇 억년 혹은 1조년에 1초의 오차를 갖는 시간 표준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강대국이다. 정밀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초정밀 반도체 소자 및 기구물들을 만들어야 하고 반도체 제조를 위해 기계·전자·화학·광학 소재 등 전 산업이 따라줘야만 한다.

 10의 마이너스 몇 승의 정밀도를 지닌 계측기기를 만드느냐에 따라 10-³, 10-6, 10-9, 10-12, 10-15 산업국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계측기산업은 곧 그 나라 산업화의 척도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계측기 분야에서만 지난 97년 기준으로 한해 30억 달러 이상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계측기 분야에서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나 장기적인 발전전략을 수립해 체계적으로 육성하지 못하면 우리에겐 기회가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세계 계측기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최소한 두번의 좋은 기회를 놓쳤다.

 대표적인 것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용 계측기기다. 우리나라는 CDMA 방식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며 통신 기술력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있으나 속사정은 한심할 정도다. 미국 퀄컴사에 막대한 금액의 CDMA 원천기술 사용료를 지불할 뿐 아니라 CDMA 단말기 생산라인에 필수적인 SMD장비 구입비 40억∼70억원, 계측기 구입비 5백만∼1천만 달러 등을 제외하면 국내 제조업체에 남는 것은 상처뿐인 영광이며 국가적으로도 막대한 무역적자가 쌓이게 되었다.

 만약 이 국가적인 대사에 전체 개발 예산의 5∼10%만 책정해 자본재인 계측기나 SMD장비를 동시에 개발했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 국가에 걸맞은 세계 최초이자 최고인 계측기와 생산장비들을 개발, 세계시장을 선점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등이 될 수 있는 첫번째 기회를 놓친 것이다. 또 전전자교환기인 TDX시리즈의 교환기 국산화 과정에서 교환기 개발·생산과 관련된 계측기도 동시에 개발했다면 TDX장비 수출과 함께 우리의 자본재 상품도 해외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같은 잘못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국가에서 핵심역량을 기울여 개발하는 최초의 국가적 프로젝트에 필히 자본재산업도 공모해 동시에 개발해야 한다. 그래야 명실공히 세계 1등이 되고 그 결과로 무역흑자라는 작은 열매를 따는 것이다.

 계측기기산업의 규모는 작다. 그러나 계측기기가 미치는 파급효과는 엄청나기 때문에 계측기기 및 전 산업의 기초인 소재산업·부품산업·자본재산업의 장기적인 육성정책이 무엇보다 우선 수립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최소 3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므로 긴 안목의 투자와 인내가 필요하다.

 공업기반기술과제나 중기거점과제를 통해서도 30% 정도의 예산은 매년 소재나 부품산업에 배정해 장기적으로 육성해야 21세기에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

 1백년 이상의 산업 역사를 갖는 외국 선진열강의 산업기술 우산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제 30년·60년·90년 단위로 하는 장기적이고 치밀한 소재·부품·자본재 육성 프로그램을 세우고 재조명할 때다. 우리 손으로 세계 최고의 소재와 부품에 질 좋은 우리 기술력을 결합시킨다면 서구 선진국이 1백년에 걸쳐 이룬 성과를 우리는 50년 안에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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