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설계> 김충환 한국전자 사장

 올해는 세계 최대의 트랜지스터 업체인 한국전자가 전자사업을 시작한 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 전자산업 불모지나 같았던 그 당시 한국전자는 국내업체로는 처음으로 트랜지스터·다이오드 등 반도체 소자사업에 진출, 현재의 한국을 반도체 강국으로 이끌어온 인도자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 태석전자를 비롯한 태석기계·태석엔지니어링·신한전자 등 9개 계열사를 둔 그룹사로 커오기까지 한국전자는 그야말로 견실한 경영을 해온 한국의 대표적인 부품업체다. 사람으로 보면 이립(而立)의 나이에 도달한 한국전자는 이제 종합부품업체로 「조용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조용한 변신은 한국전자의 보수적인 그룹문화를 반영한 말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일관되게 보여온 책임경영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 회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사람이 지난 97년 한국전자의 사령탑에 오른 김충환 사장. 김 사장은 한국전자의 미래를 소신호 트랜지스터 등 특정 반도체분야 1위를 바탕으로 이와 연계된 이동통신부품이나 모듈 등을 생산하는 종합부품업체라고 밝힌다. 김 사장은 소신호 트랜지스터와 관련, 이미 단가 측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업체로 올라섰으며 수량 측면에서도 2위에 올라, 조만간 1위 업체로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한국전자는 고부가가치 통신용 부품으로 생산품목을 전환,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의 또 한차례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전력용 반도체, 자동차용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최대한 빨리 개발, 적기에 생산해 고객 요구에 신속히 대응함으로써 단가 위주의 매출에서 수익성 위주의 매출구조로 바꾸겠다는 전략이다.

대담:박재성 부품산업부장

 -지난해는 전문경영인으로 사실상 첫발을 밟은 한해로서 어쩌면 경영능력을 검증받는 한해일 수도 있었을텐데 공교롭게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상황에 처했고 세계적으로도 경기가 침체돼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난 한해 가장 주안점을 두고 추진한 부문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지난 한해는 정말로 한치 앞을 보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현재 연 7%대에 머물고 있는 한국전자의 회사채 수익률이 지난해 초에는 25%를 넘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또 수출에 필요한 수출어음 할인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불확실한 경영상황에서는 현금흐름을 중시하고 빠른 경영(스피드 경영)에 주력해 그동안의 성장 위주 전략에서 질 위주의 경영으로 전환이 시급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우선 현금흐름을 원활히 하고 제품개발에서 생산까지의 리드타임을 크게 단축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 결과 매출채권이나 재고자산 등 투하자산의 회전율이 30% 정도 개선됐고 리드타임 단축으로 인해 30% 정도의 원가도 절감됐습니다. 또 회사의 재무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부채비율을 1백89%까지 낮췄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난 한해는 한국전자의 보수적인 경영방침이 빛을 본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외부에서 보기엔 한국전자는 구조조정의 회오리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구조조정 작업이 적지 않게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한국전자는 IMF 이전에도 꾸준히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습니다. 지속적인 생산시설의 해외이전도 그것의 하나입니다.

 또 부진한 사업에 대해서는 사업이전이나 아웃소싱으로 전환해 1차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지난해는 직접 사업부문보다는 지원부문에 대한 아웃소싱에 초점을 두고 구조조정을 진행했습니다. 총무와 전산부문을 분사화 형태로 떼어냈으며 디자인부문은 기존 거래업체로 이관했습니다.

 이 결과 20% 정도의 인력절감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재무구조 개선작업과 구조조정에 치중한 나머지 성장은 주춤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해는 다행히 경기전망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아 국내 전자업체들은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자가 올해 기대하고 있는 사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지난해는 성장보다도 재무구조 개선과 현금흐름 개선에 주력한 한해였습니다. 올해도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 및 판매력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제고하고 신규사업을 안정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입니다.

 한국전자가 올해 기대하고 있는 품목은 SAW(Surface Acoustic Wave)필터, 세라믹 레조네이터(발진기) 등 이동통신 핵심부품과 자동차에 들어가는 얼터네이터나 점화모듈 등 전장용 반도체 부문입니다. 이동통신 핵심부품은 이를 기반으로 저잡음증폭기(LNB)와 같은 부품모듈로도 매출을 올릴 계획이며 전장용 반도체는 올해 국내 자동차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여 매출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또 삼성전자가 전력용 반도체사업을 포기함으로써 한국전자에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자는 신규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개발거점을 현지화하고 필요인력 및 기술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는 연구개발부문에 대한 개혁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올해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10% 정도 성장한 5천2백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도 한국전자가 중점 추진하고 있는 사항 중 하나인데요, 세계화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까.

 ▲한국전자는 창사 이래 전자관련 수출업체로 발전해 왔습니다. 현재 한국전자 매출의 87%가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전자는 세계화를 3단계로 나눠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1단계는 해외에 판매거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한국전자는 세계 8개국에 5개의 판매법인과 7개의 해외사무소를 운영중입니다. 다음 단계로는 생산거점의 세계화입니다. 한국전자는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 현재 4개의 해외 생산법인을 갖고 있습니다. 이 생산법인들이 생산하는 물량이 이미 국내에서 생산하는 물량을 넘어섰습니다.

 전세계 시장 내에서 생산하고 판매한다는 「메이드 인 마켓(Made In Market)」전략은 어느 정도 실현된 것이지요. 이제는 기술연구부문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마지막 수순을 밟고 있는 셈입니다. 기술연구부문의 세계화는 고객의 요구를 즉시 반영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언어를 중심으로 한 권역별 인력육성 및 재배치를 하고 필요한 인력을 보충할 계획입니다.

 -장기적으로 한국전자의 주력제품인 소신호 트랜지스터나 다이오드 등 개별소자는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면서 성장세가 완화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전자의 장기적인 생존전략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소신호 트랜지스터나 다이오드 등 개별소자는 향후 세계경기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5% 정도의 안정적이면서도 보수적인 성장을 할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습니다. 즉 수요는 꾸준히 있는 셈이지요.

 한국전자와 경쟁하고 있는 지멘스나 필립스, 그리고 일본의 개별소자 제조업체들을 관찰하면 모두 시스템사업을 갖고 있습니다. 즉 자체 물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전자는 개별소자 업체 중에서 유일하게 시스템사업을 보유하지 않은 업체입니다. 이것이 한국전자의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전자는 이러한 개별소자 업체들과 전략적인 제휴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일례로 모토롤러나 도시바와는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한국전자의 생존전략은 효율적인 투자와 인원육성을 통해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세계 개별소자 업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 개별소자분야 1위 업체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2002년쯤에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한국전자를 외부에서 보는 시각은 건실한 기업, 책임지는 기업 등 긍정적인 시각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업, 보수적인 기업 등 부정적 시각이 교차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한국전자는 「우리 회사는 전자기술의 창조를 업으로, 언제나 국제적 시야에 서서 자기 실현의 노력을 통해, 최선의 제품을 제공하여 생활문화의 향상에 공헌한다. 이 기쁨을 사회와 함께 나누어 가진다」라는 경영이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집스럽게 전자사업만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자금원이 풍부한 대기업과 달리 제한된 자원을 이용해야 하는 사업구조상 사업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는 풍토를 지켜 왔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는 반도체사업을 별 무리없이 진행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자는 이제 소품종 대량생산체제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는 책임감과 노력 등과 같은 한국전자의 그룹문화보다도 창조·도전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합니다. 저희 임직원들께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춰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새해는 한국전자가 반도체사업을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 뜻깊은 해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전자는 반도체사업을 시작으로 현재는 콘덴서·튜너 등 종합부품업체로 탈바꿈했는데요, 2000년대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2000년대 한국전자는 명실공히 종합전자부품업체로서 위상을 다져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오디오·비디오부품에서 성장분야인 고주파부품 및 전장부품분야까지 기술과 품질 면은 물론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생산품목을 확대, 초우량 종합부품업체로 재도약할 방침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정리=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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