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올 한해가 저물고 있다.
회고하건대 온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아 이를 극복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았던 한해였다. 경제주체의 핵인 기업들은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느 해보다 심한 고통과 고난을 겪었다.
전자·정보통신업계 역시 기업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분사·매각·사업철수 등과 함께 기업간의 대규모 빅딜 등 뼈를 깎는 고충을 겪은 한해였다.
구조조정은 국내 산업 전반에 걸쳐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서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특히 전자·정보통신산업의 경우 현재의 국가경제를 회생시키는 리딩산업으로서 책임과 위상이 있었기에 어느 산업보다도 혹독한 시련과 고통이 수반된 격랑의 한해를 겪었다.
사실 전자·정보통신산업은 90년대 들어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견인차였다. 한국의 대표적 수출산업이자 첨단 기술산업으로서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주도해 왔기 때문이다. 반도체·컬러TV·모니터·브라운관·전자레인지 부문 등 한국산 제품은 세계 제1의 자리를 차지했으며 전세계 60여곳에 생산 및 판매거점을 두고 있는 글로벌산업으로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첨병역할을 수행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IMF의 한파는 그동안 고속성장을 거듭해온 국내 전자·정보통신업계에 치명상을 안겨줬다. 실업률이 사상최고 수준인 8%선에 육박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내수시장은 예년에 비해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무너져 소비가 미덕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극심한 내수부진을 겪었다.
국내 전자·정보통신업체들은 내수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수출확대로 위기를 타개한다는 야심찬 전략을 추진했지만 수출환경마저 악화되면서 사면초가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동남아·CIS·중남미 등 주요 전략시장이 일시에 무너지고 중국 등 후발업체들의 도전이 거세지면서 수출부문에서도 적지않은 타격을 받았다.
고도성장에 따른 거품현상이 전자·정보통신산업 전체에 만연돼 언제부터인가 업종전문화나 세계 일류화 품목보다는 백화점식 사업이 전자·정보통신업계의 주류를 형성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수익성이 없는 사업도 수익사업부문에서 지원받아 명맥을 유지했던 것이 사실이다. 외형만 늘리면 된다는 밀어내기식 영업이 관행으로 정착돼 국내 전자·정보통신산업은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라는 경제주체의 임무를 망각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다는 정보통신사업으로 무분별한 참여 러시는 국가적으로는 과잉·중복투자를, 해당업체로선 과당경쟁으로 기업체질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도 사실이다. IMF사태로 인해 외형위주의 성장세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내수와 수출환경의 악화로 인해 국내의 내로라하는 대기업조차 생존전략을 새로 짜야 할 만큼 위기상황을 맞았다. 숱한 크고 작은 기업들이 IMF 한파를 헤쳐나가지 못하고 퇴출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제 전자·정보통신업계는 누구나 영원할 수 없다는 불패의 신화가 여지없이 깨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국내 전자·정보통신업계가 시련과 고통으로 얼룩진 격동의 한해를 마감하면서 마냥 의기소침하거나 과거의 회상에만 안주할 겨를이 없다.
세계는 지금 새로운 환경변화의 격랑기를 맞이하고 있다. 21세기를 앞두고 세계 전자·정보통신산업의 판도변화가 한층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 굴지의 전자업체들마다 디지털혁명이란 새로운 차원의 신세기를 여는 데 여념이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발빠른 진보를 거듭하는 세계 정보통신분야의 기술 패러다임에 편승하지 못하면 우리나라가 이제까지 쌓아올린 이 분야의 위상이 일거에 허물어지는 위기감마저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더욱이 본격적인 시장개방으로 인해 내수시장조차 안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IMF 한파로 얼룩졌던 격동의 98년 한해는 우리에게 「경쟁력 확보 없이는 생존불가」라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으며 우리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체득한 이 교훈을 좀더 밝은 내일을 위해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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