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반도체 부문 통합법인 책임 경영주체 선정을 위한 실사 결과가 24일 발표됨에 따라 반도체 빅딜은 일단 외형적으로는 한 고비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빅딜이 순조롭게 타결될 것으로 예상하기에는 여러 가지 돌발 변수가 산재해 있다. 경영주체가 선정됐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결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우선 평가기관인 아서 D 리틀(ADL)사의 평가결과가 예상대로 「현대전자 우세」로 나타남에 따라 피해자 측인 LG반도체는 즉각 「평가 절차의 공정성 결여」를 문제 삼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ADL의 발표 직후 LG반도체는 『2개의 기업을 공정하게 평가해야 할 컨설팅업체가 한쪽의 의견을 완전히 묵살한 채 일방적으로 작업을 진행했다』며 ADL 측을 상대로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겠다는 강경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의뢰인이 서명하지도 않은 컨설팅 계약을 컨설팅업체가 일방적으로 진행한 것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공격 대상이 ADL이지 정부나 현대그룹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빅딜의 정치적인 부담을 고려해 드러내놓고 정부 측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전략인 듯 싶다.
결국 LG는 이번 ADL의 발표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동안 주장해왔던 대로 실사 방법이나 절차에 대한 3자 합의가 이뤄진 상태에서 정상적인 실사작업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빅딜을 거부하고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있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정부의 대응 수위에 쏠리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빅딜에 직·간접으로 간여해왔던 정부기관 역시 부담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평가 결과 발표 주체와 형식을 두고 눈치작전을 거듭하다 결국 ADL이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팩스로 전송하는 선에서 마무리한 것만 보더라도 반도체 빅딜에 대한 정부기관의 고민이 작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경영주체 평가 과정이 비정상적으로 진행됐다는 사실과 이에 대한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정부나 전경련 측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는 분석이다.
ADL 측이 이날 배포한 자료에 당초 계획에 없었던 「통합의 필요성」 부분을 포함시킨 것도 반발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ADL의 평가 결과 발표와 이에 대한 LG반도체의 불복 의사가 분명해지면서 공은 정부와 채권단 쪽으로 넘어간 상태다. LG그룹 상층부의 전격적인 포기결정이나 현대그룹과 극적인 타결이 없는 한 LG의 홀로서기 선언에 이은 여신 중단·회수의 채권은행 규제 등 우려했던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최승철기자 sccho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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